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이 22일 열린 청와대 ‘5자 회동’에서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났다. 무리한 국정화 작업이 박 대통령 뜻이라는 건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대통령 육성으로 직접 그 이유를 듣는 건 의미가 있다. 이를 통해 대통령의 생각이 얼마나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왜곡되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박 대통령은 “현재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엔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될 나라이고 북한이 정통성 있는 것처럼 서술되어 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이것을 바로잡자는 순수한 뜻”이라고 말했다. 또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진의 80%가 편향된 역사관을 가져 (모든 교과서가) 결국은 하나의 좌편향 교과서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우선 박 대통령 말대로 교과서 집필진의 80%가 ‘편향’됐다면 그건 이미 ‘편향’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의 평가에서 ‘다수 전문가의 동의’를 얻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다수의 해석을 굳이 배척하려다 보니 독재를 미화하고 식민지근대화론을 긍정하는 극단적인 교과서가 등장하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 집필진의 80%가 ‘편향된 역사관’을 가졌다고 쳐도, 집필진 구성의 폭을 넓혀 다양한 교과서가 나오게 하면 될 일이다. 그게 역사 판단과 기술을 국가가 독점하는 전근대적 국정교과서 발행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더구나 박 대통령 주장은 사실관계부터 정확하지 않다. 그는 “6·25 전쟁에 관해 남과 북 공동의 책임을 저술한 내용을 (교과서에서) 봤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육부 검정을 통과해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8종의 고교 역사교과서 가운데 한국전쟁을 남북 공동 책임으로 기술한 교과서는 단 한 종도 없다. 이는 박 대통령 발언 다음날인 23일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이 국회에서 인정한 사실이다. 김 위원장은 “(교육부가) 수정 지시를 해서 (없다)”라고 답변했는데, 역설적으로 검정 제도가 제 기능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또 박 대통령이 “전체 책을 다 보면 (대한민국에 태어난 게 부끄럽다는) 그런 기운이 온다”는 말도 했다는 대목에선 아연할 따름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적시하지 못하고 ‘기운이 온다’는 추상적인 감으로 이렇게 중요한 정책을 결정해도 되는 건지 황당하다.
23일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국정화에 국민의 47%가 반대(찬성은 36%)했다. 지난주엔 찬반이 42%로 팽팽했는데 1주일 만에 여론이 확 달라졌다. 정부여당이 국정화 추진 근거로 제시했던 편향 사례들이 사실이 아닌 걸로 드러난 게 영향을 끼쳤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박 대통령은 이런 여론의 흐름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교과서에 관해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이 얼마나 근거가 없는 것인지 알기 바란다. 독선과 왜곡된 정보만큼 국가지도자에게 위험한 건 없다. 감이 아니라 사실이 정책 결정의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슈국정교과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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