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아직은 미약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집권여당이 대통령의 꼭두각시가 아니란 사실을 보여주는 듯해서 다행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당을 비롯해 보수진영 내부에서 제기되는 이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19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문제 있는 교과서를 배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그렇다고 국정 교과서로 배우는 것도 바람직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역사교과서의 국정화엔 반대한다”고 밝혔다. 서울을 지역구로 둔 김용태 의원도 “국정화 하나밖에 없다는 식으로 일방 선언해놓고 따라오라고 하니 당혹스럽고 황당하다”고 말했다. 앞서 정두언 의원은 지난주 새누리당에선 처음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남 지사와 정두언·김용태 의원도 기존의 검인정 교과서에 만족한다고 말하진 않는다. 기존 교과서의 다수가 편향돼 있다고 보는 점에선 청와대와 인식을 같이한다. 그러나 해결방법으로 ‘국정교과서’라는 시대착오적 방식을 택한 청와대와 달리, “합리적 우파들이 우수한 교과서를 만들어 시장에서 채택되게 해야 한다”(남 지사)는 주장을 편다. 이는 비록 야당·시민사회 진영과는 다른 시각이지만 충분한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여지가 있다. 공론과 타협 자체를 배제하는 ‘국정화 추진’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대통령제에서 집권여당의 역할은 대통령을 추종하는 게 아니다. 국민의 뜻을 정확히 읽고 올바른 국정 운영이 이뤄지도록 때론 정부를 비판·견인해야 한다. 요즘 새누리당은 과거 권위주의 시절보다도 훨씬 ‘못난 여당’에 머물고 있다. 속으론 반대하면서도 공개적으론 대통령에게 쓴소리 한마디 못하는 게 지금 여당의 국회의원들이다.
여당 의원들의 침묵은 내년 4월 총선의 공천권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에게 밉보여 자칫 공천에서 탈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팽배한 탓이다. 대통령이 정당 공천권을 행사한다는 발상도 시대착오적이지만 그게 무서워 입을 다무는 국회의원들도 비겁하고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여기엔 김무성 대표의 책임이 누구보다 크다. 지금 국민에게 중요한 건 경제와 일자리지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국정화’가 아니다. 집권여당 대표라면, 국정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둬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대통령에게 말해야 한다. 남 지사 등의 용기있는 발언이 집권여당의 위상을 새로 세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슈국정교과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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