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19세기까지만 해도 대통령은 별다른 보좌진을 두지 않았다.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1명의 연락비서와 1명의 개인비서만 뒀다. 백악관 비서실이 급격히 팽창하며 공식기구로서 자리잡은 건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이다. 대공황으로 정부 역할이 확대되면서 백악관 참모의 기능이 중요해졌고, 1939년 예산 지원을 받는 현대적 의미의 비서실이 골격을 갖췄다.
비서실장이란 직책은 1953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 처음 생겼다. 그러나 한때 사라진 적도 있다. 1970년대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비서실의 권력화에 비판이 집중되자, 후임인 지미 카터 대통령은 1976년 취임 때부터 2년 반 동안 비서실장을 아예 두지 않았다. 백악관 비서실장은 1979년 다시 복원돼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한국에선 초대 이승만 대통령 시절엔 단출한 규모의 비서실을 이끄는 비서관장을 뒀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청와대 비서실은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이 만들었다. 박 대통령의 강력한 국정장악 의지와 관 주도의 경제개발 필요성이 비서실에 힘을 실었다.
비서실장은 비서실을 지휘하지만 꼭 2인자는 아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엔 홍성철 비서실장보다 박철언 정책보좌관의 힘이 더 셌다. 김영삼 대통령 때엔 이원종 정무수석이 한승수 비서실장을 능가하는 실세로 꼽혔다. 김대중 청와대에서도 박지원씨가 어느 위치에 가느냐에 따라 그쪽으로 힘이 쏠렸다. 지금 청와대도 이병기 신임 비서실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을 제어할 수 있을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강한 비서실장이 좋으냐, 실무형 실장이 좋으냐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그러나 미국의 대통령학 전문가 제임스 피프너의 조언은 음미할 만하다. 비서실장이 폭군처럼 행동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언론이나 국회와 담을 쌓고 뒤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타입이 최악이라고 그는 말한다. 전임 청와대 비서실장을 떠올리게 하는 충고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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