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30일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대통령과 회담을 하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이 직접 만나 기초선거 공천 폐지를 비롯한 정국 현안을 직접 논의하자는 것이지만, 회담의 성사보다도 기초공천 폐지 공약에 대한 박 대통령의 생각을 묻는 데 무게가 실려 있는 듯하다. 안 대표가 기자회견을 “저는 오늘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기초선거 무공천 약속 이행을 다시 한 번 강력히 촉구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하고, 회견 뒤 바로 서울역으로 달려가 기초공천 폐지 서명운동에 참여한 것에서 이런 뜻을 엿볼 수 있다.
지방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여야가 선거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인 정당공천 여부에 대해 논란을 벌이고 있는 것은 결코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여기엔 대선 과정에서 기초선거의 정당공천 폐지를 가장 중요한 정치공약의 하나로 내걸고도 ‘나 몰라라’ 하고 수수방관하고 있는 박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이런 점에서 안 대표가 박 대통령을 향해 기초선거 정당공천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달라고 요구한 것은 온당하다.
안 새정치연합 대표의 입장 표명 요구가 아니더라도 지금 시점에서 박 대통령이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에 대한 의견을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선, 지방선거에서 비생산적 논쟁을 줄이고 생산적 논쟁을 활성화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 지금처럼 ‘대통령 공약 따로, 새누리당 실행 따로’인 상태로 지방선거가 실시된다면, 당면한 선거 승리를 위해 공약을 파기한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설사 선거에서 이긴다 해도 대통령의 도덕적 권위가 크게 훼손되어 역점으로 실시하려는 통일 정책과 규제개혁의 동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사정 변경에 의해 공약 파기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다면, 그 이유를 소상하게 밝히고 유권자의 판단을 구하는 게 책임 있는 자세다.
둘째, 지금의 수직적 당청관계에서는 지금이라도 박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기초선거 공약을 실행할 수 있다. 정치공약은 예산이 따르는 복지공약이나 여러 이해관계자의 복잡한 이견 조정이 필요한 규제완화보다 훨씬 쉽게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사안이다. ‘여의도 문제는 여야 관계에 맡기고 관여하지 않는 게 대통령의 방침’이라는 것은 편의적인 변명에 불과하다.
공은 박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지난 대선 때 기초선거 공약이 원래 잘못된 것인지, 정치적 실리 차원에서 약속을 어기기로 한 것인지, 지키고 싶지만 새누리당이 반대해 못 지키는지’는 안 대표의 물음이자 상식인의 질문이기도 하다는 걸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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