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하려면 얼굴에 어느 정도 철판을 깔고 덤벼야 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거짓말하고, 시치미 떼고, 약속 위반을 식은 죽 먹듯이 하는 것이 이 땅에서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의 민낯이다. 하지만 기초선거 공천 문제에 대해 새누리당이 보이는 태도는 이런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그것은 단순히 뻔뻔함이라든가 약속 위반이라든가 하는 차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새누리당은 정치가 어디까지 잘못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막장 정치’의 신기원을 열어가고 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27일 광주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기초선거 무공천은 무책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가게에 진열된 물건에는 회사 이름과 상표가 붙어 있는데 기초선거에서 무공천할 경우 아무 물건이나 진열한 뒤 소비자들에게 고르라는 무책임한 발상”이라는 등의 비난도 퍼부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대선 공약을 파기한 쪽이 약속을 지키려는 쪽을 비난하고 나섰으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오는 6월 지방선거는 지금 이대로 가면 역사상 유례없는 기묘한 형태로 치러지게 될 게 분명하다. 어떤 정당은 기초선거 공천을 하고 어떤 정당은 공천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지구상에는 없는 일”(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새누리당의 대선 공약 파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선 공약을 뒤집은 새누리당은 땅 짚고 헤엄치기식 선거를 하고 있는 반면, 약속을 지키겠다는 야당은 전전긍긍하는 불합리와 모순이 빚어지고 있는 점이다. 정의가 뒤집히고 상식이 물구나무선 씁쓸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새누리당이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차라리 입이라도 조용히 다물고 있는 게 옳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야당 안에서 기초선거 무공천 재고 주장이 나오는 것에 대해 “대국민 약속을 뒤집으려는 검은 속내” 따위의 비난을 퍼붓더니, 이제는 당 대표가 나서서 “무공천은 무책임”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마치 쥐를 갖고 노는 고양이처럼 약속 준수의 덫에 걸린 야당을 갖고 온갖 야비한 장난을 치고 있는 형국이다.
새누리당에 묻고 싶다. 약속 위반과 거짓말이 그처럼 자랑스러운가. 그리고 그런 비겁한 방식으로 지방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그렇게 기쁜 일인가. 새누리당이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는 정당이라면 지금이라도 야당과 기초선거의 공정한 규칙을 만들기 위해 협의를 시작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최소한의 정치적 도의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그런 상식적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정당은 결코 아닌 듯하다. 한국 정치의 앞날이 참으로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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