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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민생 대 정치’ 대결구도의 허구

등록 2014-03-05 19:05수정 2014-03-05 20:04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진정한 새정치는 민생과 경제를 챙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우리 정치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새정치’를 핵심고리로 이뤄진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통합 신당 창당 선언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발언이었다. 박 대통령의 말이 나오기가 바쁘게 새누리당에서는 “신당 놀음보다 민생부터 챙기라”(최경환 원내대표), “민생이 정쟁에 우선한다는 원칙 아래 복지 3법 등 시급한 현안을 조속히 처리하자”(황우여 대표)는 등 민생 공세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집권여당이 선거를 ‘민생 대 정치’의 대결구도로 몰고가는 것은 매우 익숙한 풍경이다. 정치가 민생의 발목을 잡고 야당이 민생의 훼방꾼이라는 식의 논리는 여당이 선거 때마다 써먹는 단골 메뉴다. ‘선거의 여왕’인 박 대통령이 이런 ‘민생 세일즈’의 중요성을 놓칠 리 없다. 그렇지만 과연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생을 앞세울 자격이 있는지는 참으로 회의적이다.

우선 박 대통령의 말이 나온 지 몇 시간 뒤 최측근인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이 인천시장 후보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부터 한편의 코미디다. 안행부 장관은 국민의 안전과 치안을 책임지는 민생 분야의 핵심 장관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의 주요 공약인 4대 악 척결을 비롯해 폭설 피해, 조류인플루엔자 방역 등 챙겨야 할 민생 현안도 산적해 있다. 박 대통령의 논리대로라면 민생을 내팽개치고 정치로 달려간 유 장관을 엄히 질책해야 마땅할 텐데 오히려 박 대통령은 선거 중립 의무를 저버리면서까지 그를 ‘격려’했다니 참으로 기가 막힌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더욱 팍팍해져만 가는 서민들의 삶을 돌아보면 박 대통령의 민생 타령은 후안무치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악화되는 취업난, 청년실업의 증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가계부채, 경기악화에 따른 정리해고 증가 등 서민들의 삶의 붕괴는 각종 통계가 웅변한다. 박 대통령이 민생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예로 든 잇따른 생활고 비관 자살도 따지고 보면 이 정부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이런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과는 무관한 것처럼 말한다.

더욱 근본적인 측면에서 보면 민생을 정치의 대척점에 놓는 것부터 허구적이고 기만적이다. 민생과 정치는 결코 대립항이 아니다.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쪽을 포기해야 하는 관계도 아니다. 정치와 민생은 결코 분리할 수 없으며, 좋은 정치는 좋은 민생의 선결요건이다. 민생은 내팽개치고 정치에만 몰두한다는 식의 논리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혐오감을 부추겨 반사이익을 챙기려는 교묘한 술책일 뿐이다. 오히려 민생은 단순히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의미를 국한해 볼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와 인권 등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개념으로 확장해야 마땅하다. 선거에서 거짓된 ‘민생 신화’를 추방하고 대신에 제대로 된 정치적 격돌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민생을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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