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6일 오후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기쁜 표정으로 법원을 빠져나오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 결과를 축소·은폐해 선거법과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법원이 6일 무죄를 선고했다. 선거개입 의도가 있었다는 권은희 당시 서울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서울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의 주장은 믿지 않고, 자체 판단으로 “지지 댓글 없다”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는 다른 경찰들과 김 전 청장 쪽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다.
판결 내용을 살펴보면, ‘합리적 의심’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의 엄밀한 증거를 요구하는 형사법의 대원칙을 내세우고 있으나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적잖다.
우선,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가 40개의 의심스런 아이디와 닉네임을 사용한 사실을 서울경찰청 디지털증거분석팀이 확인했고, 김 전 청장이 그에 대해 보고받고도 허위의 보도자료 배포를 지시한 사실까지 재판부가 인정해 놓고 “선거에 개입할 의도가 없었다”고 결론지은 것은 상식에 반한다. 김 전 청장이 수사를 맡은 서울수서경찰서에 분석 상황을 알려주지 말라고 지시하는 등 ‘의도’를 의심할 만한 여러 증거들을 고려하면, 재판부가 “아쉬움이 남는다”면서도 굳이 무죄를 선고한 것은 논리 전개상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재판부가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의 노트북 압수수색 영장 보류 과정 등 여러 쟁점들을 거론하면서, 권 과장보다 다른 경찰관들의 주장이 맞다고 판단한 것도 문제다. 나중에 서울경찰청 디지털증거분석팀의 폐회로티브이를 통해 확인됐듯이 이들은 국정원 직원 김씨가 대선 관련 게시글을 ‘추천’하고, 이틀간 오피스텔에서 나오지 않은 채 댓글 흔적을 삭제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경찰은 이런 사실은 덮어둔 채 “비방·지지 게시글이나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해 결국 국민을 속였는데도, 이런 경찰의 말이 맞다고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미 국회 청문회를 통해 권 과장을 제외한 나머지 경찰들이 말을 맞춘 것 같다는 의혹이 제기돼온 것과는 동떨어진 판단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가 지난해 11월 유권자 2000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 중 9.7%가 ‘당시 경찰이 사실대로 밝혔다면 문재인 후보를 찍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법원의 판단대로라면 허위사실 발표로 대선 당락에 영향을 미치고, 국민을 우롱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인가.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범균)는 증거주의를 내세워 거짓과 진실을 뒤바꾼 ‘기교 사법’의 전형이란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박근혜 정권은 이 사건 수사에서 재판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외압과 방해를 가했다. ‘채동욱·윤석열 찍어내기’에 이어 수사검사들까지 지방으로 보내는 등 공소유지까지 훼방놓았다. 권 과장은 승진에서 탈락시켰다. 박 대통령이 ‘젊은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란 태도를 고수한 채 “재판 결과에 따라 조처하겠다”며 법원에 간접적 압박을 가하더니 결국 사법부까지 정권에 굴복한 모양새가 돼버렸다. 상소심까지 그런다면 특검의 재수사를 통해서라도 진실을 되찾는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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