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안에 교과서 편수(편집과 수정)를 담당하는 조직을 부활시키겠다는 서남수 교육부 장관의 9일 발언은 교과서 내용에 대한 정부의 직접 통제를 크게 강화하겠다는 말과 같다. 그동안 오랜 시일을 거쳐 발전시켜온 검인정제도의 취지에 어긋나는 군사정권식 발상이다. 정부는 시대착오적인 시도를 즉각 중단하기 바란다.
역사 교과서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일차적인 검정 책임이 있는 국사편찬위원회가 수준 미달의 역사왜곡 교과서를 통과시킨 이후 정부·여당이 이 교과서를 적극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정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의도를 갖고 역사전쟁에 끝까지 매달리는 정부·여당과 일부 우익세력이 문제인 것이다.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교사·학부모·학생 등의 심판은 이미 내려진 상태다. 그럼에도 반성하기는커녕 과거로 돌아가겠다는 교육부의 행태는 일부 우익세력과 손잡고 역사왜곡에 앞장서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정부가 편수 조직을 부활시켜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가는 징검다리로 삼으려 한다는 우려도 적잖다. 새누리당과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앞다퉈 국정화를 주장하는 것을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현재 국정제도를 유지하는 나라는 북한과 러시아·베트남·필리핀뿐이다. 정부가 편수 조직을 활용해 사실상 국정제도처럼 운영할 수도 있다. 실제로 교육부는 교과서를 집필할 때 반드시 따라야 하는 집필기준 작성부터 최종 검정까지 모두 참여하겠다고 하고 있다. 교육부는 편수 조직이 없는 지금 상황에서도 사실상의 재검정과 수정명령 제도를 남용해 교과서 내용에 개입했다.
편수 조직 부활은 선진국 중에서 유례가 없는 일본의 사례를 모방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검정조사관 등을 통해 사실관계 검증뿐만 아니라 정부 시각을 교과서 저자와 출판사들에 사실상 강요한다. 검정에서 탈락하지 않으려면 정부 말을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우익 정부들은 이런 식으로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기술을 늘리고 군대위안부 문제 등 식민지배와 관련한 표현을 후퇴시켰다. 정부가 일본 체제를 따라가는 것은 단순히 부끄러운 일에 그치지 않는다. 일본의 역사왜곡을 비판해온 우리나라의 입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정부는 먼저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역사전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기존 검정제도의 수준을 높이는 데 힘을 쏟아야 마땅하다. 정부가 교과서 내용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헌법 정신에도 어긋난다. 헌법 31조 4항은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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