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독재를 미화한 교학사 역사 교과서의 채택률이 사실상 0%를 기록한 것은 우리 국민의 건강한 역사의식을 잘 보여준다. 애초 전국 고교의 1% 미만인 10여곳이 이 교과서를 선택했으나 학생·학부모·동문 등의 거센 비판을 받아 다른 교과서로 바꾸고 전북 전주 상산고 등만 남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도 교과서 사태를 주도한 정부는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
교학사 교과서 문제가 불거진 배경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그는 6일 새해 기자회견에서 기존 교과서의 대표적인 이념편향 사례로 ‘일부 교과서에서 불법 방북을 처벌한 것을 탄압이라고 한 것’을 꼽았다. 하지만 지금의 어느 교과서에도 이런 내용이 없다. 청와대 쪽은 이전의 한 교과서에 비슷한 기술이 있었다고 변명하지만 무책임한 태도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역사전쟁’의 불씨를 댕긴 지난해 6월 발언과 같은 맥락에 있다. 그는 당시 ‘고교생 응답자의 69%가 6·25를 북침이라고 응답한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며 교육현장의 역사왜곡을 질타했으나 정치적 목적으로 사실을 왜곡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응답자들이 북침이란 말을 북한의 침략이란 뜻으로 오해한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6월 발언 이후 국사편찬위원회가 교학사 교과서를 검정에서 통과시키고 교육부가 이 교과서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역사전쟁이 본격화했다. 교육부는 심각한 사관의 문제뿐만 아니라 도저히 고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오류가 드러난 이 교과서를 살리려고 온갖 편법을 동원했다. 그 중심에는 서남수 장관이 있다. 그가 이 교과서의 문제점을 몰랐다면 그 자체가 큰 문제이고, 알면서도 청와대 등의 눈치를 보느라 지금까지 왔다면 교육부 수장으로서 자격이 없다.
대통령이 부적절한 사례까지 들며 기존 역사교육을 비난하는 데는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부각시키려는 등의 이유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권력자와 소수 기득권층의 입맛에 따라 역사 기술이 좌우돼서는 안 된다. 박 대통령은 ‘역사는 민족의 혼’이라고 했지만,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 0%에서 보듯이 국민이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더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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