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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이 정부는 누구와 노사정 대화를 하겠다는 건가

등록 2013-12-24 19:04수정 2013-12-25 16:21

한국노총이 23일 정부와 대화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노사정위원회는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예상됐던 일이다. 한국노총이 아무리 민주노총과 결이 다르다고 하지만, 노동운동 역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아 모른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민주노총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정부라면 한국노총이라고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한국노총의 대화단절 선언 직전에 나온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듣는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노사정 대타협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나름 한국노총과 노사정위에 공을 들인 것으로 안다. 대통령 취임 직전 한국노총을 방문해 “한국노총과 항상 끊임없이 소통하고 문제점과 애로를 해결하는 데 각별히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9월에는 노사정위를 찾아가 “노사정위가 사회적 대화기구로서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뒷받침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그래 놓고도 민주노총 난입으로 한국노총이 노사정위를 탈퇴하게 한 것이다. 초보적인 예측능력이 없다고 봐야 하는 건지, 뺨 때리고 어르는 건지 알 길이 없다.

노사정의 공식적인 대화의 문이 닫히면서 산적한 노동 현안 처리도 줄줄이 멈춰설 전망이다. 대법원 통상임금 판결에 따른 임금체계 개선, 정년 60살 법제화에 따른 임금피크제 도입, 근로시간 단축 등은 이제 말도 붙이지 못하게 됐다. 게다가 한국노총은 요즘 선거철이다. 5명의 위원장 후보들끼리 일정 정도 선명성 경쟁이 불가피하다. 내년도 임금·단체협상은 확전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노동계의 전면적인 춘투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과거 두 노총은 1997년 김영삼 정부 때 노동관련법 날치기 처리 때문에 닷새 동안 함께 연대 파업을 한 적이 있는데, 그 경험이 되풀이될 수도 있다.

이는 사회적 대화의 암흑기로 분류되는 이명박 정부 5년보다 더 심각한 후퇴이다. 이명박 정부 때는 ‘영포라인’으로 분류되는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노사관계를 왜곡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지만, 그래도 한국노총이 노사정을 탈퇴한 기간은 2009년 두 달밖에 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회협약의 본보기로 ‘바세나르협약’을 꼽고 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노사정은 이 협약을 통해 임금인상 억제와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사회안전망 강화를 이뤄냈다. 박 대통령은 협약의 결과만 볼 뿐이지, 그런 결실을 맺기까지의 대화와 설득이라는 지난한 과정에는 애써 눈을 감고 있는 모양이다. 특히 대타협을 위해서는 노조가 강해야 한다는 게 원칙이다. 노조가 약하면 노동자들의 양보를 이끌어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파업 등 극단적인 행동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오히려 크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노조를 존중해야 한다. 거기에서부터 대화가 시작되고 대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다. 지금이라도 경찰의 민주노총 강제진입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한다면 대화의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다. 사태가 악화할수록 대화의 가능성은 점점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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