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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대통령의 잘못된 원칙론, 사태만 악화시킬 뿐이다

등록 2013-12-23 18:52수정 2013-12-23 20:18

박근혜 대통령은 23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당장 어렵다는 이유로 원칙 없이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간다면 우리 경제·사회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을 것”이라며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명시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철도노조 파업 사태 등에 대해 정부가 적당히 물러서거나 타협하지 않고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표시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말을 접하면서 맨 처음 떠오르는 의문은 과연 박 대통령의 ‘원칙’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아마도 ‘불법파업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한다. 그렇지만 현행 노동 관련법의 정신이나 기존 대법원 판례 등에 비춰볼 때 철도노조 파업이 불법인지도 의문이지만 다른 의문들도 꼬리를 문다. 압수수색영장이 기각된 마당에 체포영장 하나 갖고 언론사 건물에 들어가 민주노총을 쑥대밭으로 만든 것이 공권력 행사의 원칙에 부합하는지, 폭동 진압 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의 난리법석을 치르고도 정작 수배자는 한 명도 잡지 못한 실패한 작전을 두둔하는 것이 대통령이 보여야 할 원칙인지 하는 의문들이다. 그리고 민주노총이 경찰의 강제진입에 격앙해 총파업을 선언한 데 대해 다시 정면대결을 선언하고 나섰으니 참으로 점입가경이다.

굳이 원칙을 따지자면 코레일 자회사 설립 문제부터가 원칙이 모호하기 짝이 없다. 예를 들어 정부는 경영효율을 높이기 위해 경쟁체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지만 모기업과 자회사 간 경쟁체제라는 것이 ‘경제학의 원칙’에 맞는지부터 의문이다. 모기업이 자회사의 경영과 관련한 중대한 의사결정을 하고, 자회사 경영실적이 모기업의 경영실적에 포함되는 구조에서 어떤 경쟁체제가 유지된다는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역대 정권을 되돌아보면 권위주의 정권일수록 정면돌파론이 기승을 부렸다. 국민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느니, 엄단하겠다느니, 기필코 척결하겠다느니 하는 말을 남발했다. 권력이 국민 곁으로 다가와 더불어 의논하고, 설득할 것은 설득해서 문제를 합리적으로 풀려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박정희 정권을 비롯한 권위주의 정권의 전형적 속성을 박근혜 대통령이 다시 앞장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강경대응론은 바꾸어 말하면 국정 현안의 합리적 해결 능력의 부족을 스스로 실토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제 해결을 공권력이라는 물리력에 떠넘기는 안이하고 비겁한 태도다. 더욱이 이런 강경대응은 사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확대재생산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당장 경찰의 민주노총 강제진입이 노동계 총파업 선언을 부르고, 여기에 정부가 다시 강경대응으로 맞서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원칙과 무타협이 언제나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다. 특히 난마처럼 얽힌 정치·사회 현안을 해결하는 데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 십상이다. 박 대통령의 어투를 빌려 말하면 이렇다. “당장 어렵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노력해야지 무작정 강경일변도로 밀고 나가서는 우리 경제·사회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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