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장성택 전 조선노동당 행정부장을 전격 처형한 뒤 김정은 유일체제 다지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연일 공개 활동을 이어가며 민심을 달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로동신문> 등의 선전매체가 총동원되어 백두혈통을 내세운 충성 여론몰이를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장 전 부장의 숙청으로 김 제1비서의 최측근으로 떠오른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16일 군 장병의 맹세모임에서 충성맹세문을 직접 읽으며 군부의 단합을 이끌었다.
17일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 2주기 추모행사에서도 이런 흐름이 그대로 나타났다. 김 제1비서의 고모이자 장 전 행정부장의 부인 김경희가 불참한 것과 선군 사상이 이전보다 강조된 것이 눈에 띄었으나, 이상 조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동안 공개 자리에 나오지 않았던 김 제1비서의 부인 리설주도 17일 김 제1비서와 함께 금수산궁전을 참배했다. 장 전 부장의 처형에 대한 외부 세계의 충격과는 달리 북한 내부는 큰 요동 없이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안정이 ‘공포의 안정’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또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군사도발을 감행할 개연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북한 내부 정세를 면밀하게 주시하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지만 정부·여당의 대응 자세는 근거 없는 억측 남발에 과장이 많고 신중하지 못하다. 대책도 없으면서 오히려 상대를 자극해 불안을 유도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북한이 내년 1월~3월 초에 대남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김관진 국방장관의 17일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 발언과, “4차 핵실험 징후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는 조원진 국회 국방위 간사(새누리당)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주요 외교·안보 책임자가 명확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아니면 말고’ 식의 억측을 남발하는 것은 곤란하다. 안보 위협에 대한 대비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날 외교안보장관회의 사무처 설치를 지시하는 과정도 너무 즉흥적이다. 한반도 정세의 유동성과 중국·일본의 대응에 비춰볼 때 우리도 외교안보장관회의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갑자기 발생한 북한의 불안정을 설치 이유로 드는 것은 옹색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한반도에 더 많은 긴장상태를 원하지 않는 만큼 (북한의 상황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바로 지금은 반 총장의 말대로 섣부른 말과 행동을 자제하고 상황을 조용히 지켜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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