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주요 인사와 수구세력을 중심으로 고교 한국사 교과서 발행 체제를 국정으로 되돌리자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정권 입맛에 맞는 역사해석만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겠다는 전체주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국정 한국사 교과서 체제의 문제점은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이 끝난 사안이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 독재체제를 구축한 직후인 1974년 2월 당시 11종이던 중·고교 국사 교과서를 모두 없애고 단일 국정교과서를 도입했다. 이 교과서가 유신 체제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데 악용된 것은 물론이다. 국정 체제는 권력을 옹호하고 획일적 시각을 강요한다는 비판 속에서도 30년가량 유지되다가 2000년대 들어 검정 체제로 바뀌었다. 여러 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는 자유발행제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검정 체제 도입에는 역사적·시민적·학문적 반성이 농축돼 있는 것이다. 이를 무시하고 이제 와서 다시 국정 체제를 들먹이는 것은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퇴행적인 모습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주장이 제기된 과정 또한 정략적이고 음모적이다. 애초 문제는 수준 이하의 품질에다 친일·독재를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에서 버젓이 통과된 데 있었다. 정부가 검정 부실을 인정하고 이 교과서에 대한 대책을 내놓으면 그만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이 교과서를 지키려고 8종 교과서 모두에 대해 사실상의 재검정을 실시했고, 이제 검정 제도 자체를 문제 삼으면서 국정 체제를 주장한다. 친일·독재를 옹호하는 교과서가 국정이 될 때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음모적 행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촉발한 ‘역사전쟁’에 여권 전체가 동원되는 꼴이기도 하다.
역사는 사실에 근거해야 하지만 해석의 다양성도 인정한다. 문제는 사실 선택이 그릇되거나 편협하고 해석이 학계 다수의 동의를 얻기 어려울 때 발생한다. 교학사 교과서가 바로 이런 경우이며, 검정 제도는 이를 걸러내기 위한 것이다. 친일·독재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내용을 교육하고 싶다면 적어도 먼저 학계의 진지한 논의를 거쳐 인정받는 절차를 거쳐야 마땅하다. 이는 우리 헌법에 규정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 및 정치적 중립성 보장’에도 부응한다.
정부여당이 당장 해야 할 일은 교학사 교과서를 퇴출시키고 검정을 내실화할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편법을 동원해 교학사 교과서 살리기에 나선 것도 모자라 국정 체제 회귀까지 주장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망발일 뿐이다. 정부여당은 역사와 국민을 두려워하는 마음부터 갖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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