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의 발언이 가관이다. 이런 사람이 국사편찬위원장으로 있는 한 ‘우리 역사 바로 알기’는 불가능하다. 본인이 스스로 사퇴하지 않는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유 위원장을 경질해야 마땅하다.
유 위원장은 15일 새벽까지 이어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햇볕정책은 친북정책이고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에 대해 당당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반미정책’이라고 했다. 역사 왜곡을 넘어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친북·반미로 몰아붙이는 망발이다. 햇볕정책의 공과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박근혜 정부도 햇볕정책을 일정 부분 계승한다고 말해왔다. 반미에 관한 대목 역시 사고의 중심을 미국 강경파에 두고 있다고 할 정도로 편협하다. 모두 학문적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갖춰야 할 국사편찬위원장으로선 할 수 없는 말이다. 그는 2009년에 이런 내용의 발언을 하지 않았느냐고 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묻자 ‘기억이 안 난다’고 잡아떼다가 야당이 ‘위증죄로 고발한다’고 하자 태도를 바꾸기도 했다.
유 위원장은 몇 달 전 내정 사실이 흘러나왔을 때부터 부적격자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우상화하는 연구에 집중해온 ‘이승만주의자’로서 이른바 뉴라이트 세력들과 행보를 함께해왔다. 다양성이 요구되는 학계에서는 이런 사람도 있을 수 있으나,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국립 '사료편찬기관'이자 한국사 연구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의 수장으로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역사학계를 비롯한 다수 국민의 뜻이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9월 하순 그의 임명을 강행했고, 유 위원장의 이번 발언은 사태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정부·여당은 최근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와 친일인사들을 미화해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교학사 교과서를 옹호하고 있다. 유 위원장은 이 교과서의 저자들과 밀접하게 연관된 뉴라이트 학회인 한국현대사학회의 상임고문이면서 이 교과서의 원조 격인 대안교과서를 감수한 바 있다. 여권이 치밀한 시나리오를 갖고 ‘역사 쿠데타’를 추구하고 있으며 유 위원장의 임명은 그 일부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유 위원장의 발언이나 교학사 교과서의 문제점에는 눈을 감고 거꾸로 국정 역사교과서 제도의 부활을 주장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고 있는 독재자라는 멍에를 벗겨주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역사는 개인의 것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유영익 위원장을 그냥 둔다면 그를 통해 역사를 사유화하려 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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