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3일 국사편찬위원회(국편)의 새 위원장에 유영익 한동대 석좌교수를 내정했다. 유씨는 편향된 이념적 사고틀에 갇힌 ‘이승만주의자’로, 학문적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갖춰야 할 국편 수장으로 적합하지 않다. 그의 내정은 철회돼야 마땅하다.
유씨는 4·19 혁명으로 쫓겨난 이승만 전 대통령을 ‘가장 유능했던 독립운동가, 탁월한 외교가, 대한민국의 설계자’로 부각시키는 연구에 집중해온 사람이다.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은 하느님과 밤새도록 씨름한 끝에 드디어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낸 야곱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위업”이라고 했을 정도다. 이런 역사관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4·19 혁명의 정신을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규정한 헌법 정신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이런 사람이 ‘우리나라 유일의 국립 사료편찬기관이자 한국사연구기관’이며 역사교과서 검정까지 책임지는 국편의 수장이 된다면 연구자들과 국민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유씨는 이명박 정부가 2008년 건국절을 추진할 때 역사학계에서 이를 앞장서서 지지하고 추진한 정치색이 강한 학자다. 그는 친일·독재를 미화해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뉴라이트 성향 교과서포럼의 고문으로 ‘대안교과서’를 감수했고, 뉴라이트들이 중심이 돼 2011년 결성한 한국현대사학회의 고문을 맡고 있다. 그는 얼마 전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백년전쟁>과 관련해 이승만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김일성 찬양’으로 몰아가는 공안적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뉴라이트 성향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교학사)의 내용은 교과서포럼 및 한국현대사학회의 주장과 동일하다. 교학사 교과서는 대안교과서의 확장·수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교과서 모두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를 미화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와 주요 친일인사들의 행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교학사 교과서가 일선 학교에서 사용된다면 우리가 일본 쪽에 역사왜곡에 대해 항의할 근거조차 취약해질 것으로 학계 인사들은 내다본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유씨의 국편 위원장 임명을 강행한다면, 교학사 교과서를 무리하게 합격시킨 국편을 옹호하고 역사왜곡에 힘을 실어주는 일이 될 뿐이다.
유씨는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국편 위원장으로 맞지 않는다. 하지만 청와대 쪽은 유씨에 대해 “사료 수집과 보존, 연구 등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올바르게 정립하는 역할을 담당할 국사편찬위원장으로 적임”이라고 했다.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는 더 늦기 전에 잘못을 바로잡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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