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행적을 지나치게 미화한 것으로 비판받은 뉴라이트 성향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내용이 공개된 이후 새로운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30일 검정심의에서 이 교과서에 대해 최종 합격 판정을 내린 국사편찬위원회의 책임이 크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즉각 이 교과서의 검정합격을 취소함으로써 잘못을 바로잡기 바란다.
이 교과서는 일제 말기인 1944년 여자정신근로령 발표 이후 군대위안부 강제동원이 이뤄진 것처럼 축소·왜곡했다. 1930년대부터 위안부로 끌려갔다는 피해자의 숱한 증언과 관련 연구들을 무시한 것이다. 일본의 고교 교과서 상당수가 조선과 네덜란드·필리핀 등의 위안부 피해까지 서술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도 큰 문제가 있다.
또 대표적 친일파인 박흥식 화신백화점 사장과 김연수 경성방직 창업주 등에 대해서는 경제적·사회적 행적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친일행위를 감추려 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일제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식민사관을 적극 받아들인 흔적도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인들은 시간 사용의 합리화와 생활 습관의 개선을 일제로부터 강요받았다. …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지속될수록 근대적 시간관념은 한국인에게 점차 수용돼 갔다”는 서술이 대표적인 보기다.
교과서 내용의 오류도 다른 교과서에 비해 훨씬 많았다. 이 교과서 중 일제시대 집필에 참여한 이명희 공주대 교수는 2일 ‘위안부(동원시점)를 1944년부터라고 학생들이 오해할 수 있다면 수정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릇되게 기술해 놓고 ‘문제가 있다면 고치겠다’는 무책임한 태도다. 국사편찬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이 교과서는 표기·표현에 대한 것 외에 내용에 대한 수정·보완 사항이 479개나 됐다. 다른 7종의 교과서들은 300개 이하에 그쳤다는 점에서 이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한 것 자체가 일종의 특혜로 보인다.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평가받는 <동아일보> 설립자 인촌 김성수를 항일 인사인 것처럼 기술한 것도 모자라 그와 장덕수 동아일보 초대 주필을 미화하는 별도의 상자 지문까지 실은 것은 또다른 의혹을 사고 있다. 이 교과서를 펴낸 교학사는 2011년 2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상황에서도 출판업과 무관한 동아일보사 계열의 종합편성채널 <채널에이>에 8억원을 투자했다. 사적인 관계가 교과서 내용의 기술에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이 교과서는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과 주요 친일 인사들을 미화하기 위해 출판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냥 둘 경우 학생들에게 끼칠 영향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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