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논설위원
민심은 과연 천심인가. 선거 결과 드러난 민심은 결코 토를 달아서는 안 되는 신성불가침의 대상인가. 요즘 부쩍 뇌리를 맴도는 의문이다. 이런 질문이 4·11 총선 결과에 대한 개인적 실망감과 무관하지 않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버스 떠난 뒤의 손 흔들기와 같은 부질없음도 잘 안다. 하지만 이 물음은 정치 현상을 지켜보면서 늘 머리를 떠나지 않는 화두다.
선거 결과로 표출된 민심은 언제나 찬양의 대상이다. 현명한 선택, 올바른 판단, 준엄한 심판, 절묘한 균형감각 등 칭송의 수사도 현란하다. 그것은 무조건 머리를 조아리고 받들어야 할 지엄한 명령이다. 여기에 삐딱한 불만을 제기했다가는 바보가 되기 십상이다. 민심은 하늘이니 한낱 하늘을 보고 주먹질하기요, 바늘구멍으로 하늘을 보는 우매한 행동에 불과하다.
민심에 대한 경배는 민심의 무오류성에 대한 맹신으로 이어진다. ‘유권자의 선택’이라는 말은 모든 것을 무력화시키는 주술이다. 심지어 제수 성추행과 논문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김형태·문대성 당선자를 두고도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은 사람들”(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이라고 칭송하는 언론인이 나타나는 현실이다.
사실 민심은 언제나 현명하고 올바른 것만은 아니다. 변덕스럽고, 까탈스럽고, 쉽게 싫증내고, 냉소적이며, 도도하다. 진실된 마음보다는 예쁜 화장술에 쉽게 현혹되며, 가벼운 바람에도 흔들리고 허황된 유혹에도 어이없이 넘어가는 것이 민심이다. 하늘치고는 수준이 상당히 떨어지는 하늘이다.
이 대목에서 이런 힐난이 당연히 나올 것이다. ‘민심의 속성이 그런 줄 몰랐나? 민심을 얻지 못한 쪽이 잘못이지 왜 민심 탓을 하는가?’ 백번 지당한 말이다. 변화무쌍한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자멸한 야권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다만 여기서 강조하는 바는 ‘유권자의 선택’으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려는 태도의 위험성이다.
얼마 전 방송에서 역사학자 전우용씨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요즘의 국민은 과거의 왕들보다 더 절대적이고 신성한 존재다. 그런데 조선시대 왕들은 지금의 고3들처럼 살았다.”(<교통방송> ‘서화숙의 오늘’) 경연 등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 예전 왕들에 비해 지금의 유권자들은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이다. 정곡을 찌르는 이야기다.
현대 정치의 왕들에 대한 교육 기능은 상당 부분 언론이 맡고 있다. 경연관들이 아침저녁으로 어떤 경연을 펼치느냐는 왕의 판단력에 큰 영향력을 끼친다. 교육의 태만함, 잘못된 주제 선정, 왜곡된 내용의 주입은 국정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밖에 없다.
김형태 후보자 당선을 예로 보자. 이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인 한의사 정휘씨는 “이곳 유권자들이 자괴감과 충격으로 공황 상태”라고 전했다. 그러면 왜 그런 일이 벌어졌나. “그 문제가 별로 언론에서 부각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일이 있는 줄도 모르고 투표했다. 시민단체에서 보도자료를 냈는데도 중앙의 보수언론들은 물론이고 지역언론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신문 소유주가 새누리당과 가까운 사이인데 그런 기사를 쓰겠는가.” 어디 이 지역구 한 곳뿐인가. 민심의 교묘한 조작은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민심의 오도는 선거 과정뿐 아니라 선거 후에도 일어난다. 모든 것을 유권자의 선택으로 돌리고 정작 공동체가 마주한 문제의 본질은 회피한다. 총선 결과 또다시 확인된 망국적 지역병에 눈감는 것도 대표적인 예다. ‘낙동강 벨트’를 새누리당이 지켰네 말았네, 대구·경북에서 ‘박풍의 위력’이 다시금 확인됐네 하는 식의 해석만이 난무한다. 기껏 지역구도를 말해도 ‘호남의 벽’이 얼마나 단단했는지를 강조함으로써 피장파장, 유야무야로 만들어버린다. 유권자의 선택은 존중돼야 한다는 논리 속에 기득권은 교묘히 유지된다.
지금의 민심 생산-유통 구조는 민심을 만든 쪽이 스스로 결과를 칭찬하는 쳇바퀴 안에 들어 있다. 민심 찬양은 또다른 민심 오도의 시작이다. 여기에 민심 경배의 치명적 독이 숨어 있다. 민심의 존재 양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한 이유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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