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핵심 쟁점인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에 대해 법무부가 공식 문서로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던 것으로 드러났다. 법무부가 지난해 10월 발간한 <한국의 투자협정 해설서>를 보면, 법무부는 한-미 협정의 투자 관련 조항이 특수한 ‘미국식 모델’을 반영한 것이며 우리나라가 맺은 기존 투자협정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적시해 놓았다. 이는 기존 협정과 다를 바 없다고 강조해온 외교통상부와는 사뭇 다른 의견이다. 외교부가 정부 관련 부처와 제대로 협의하지 않고 비준동의를 몰아붙인다는 의혹을 살 수밖에 없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외국 기업이나 투자자가 협정 상대국의 국가기관을 상대로 국제중재기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분쟁해결 절차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에서는 한-미 협정에 반영된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사법주권과 정부의 정책 자율성을 제약하는 ‘독소 조항’이라며 폐기를 주장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제도이며 그동안 우리나라가 맺은 대부분의 투자 관련 협정에도 포함되어 있다는 논리로 맞서왔다. 외교부의 이런 논리는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그대로 이식되어 있다. 박근혜 의원도 최근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일반적 제도이며 우리나라가 맺은 투자협정 대부분에 들어가 있다”며 비준안의 조속한 처리를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법무부 문건을 보면 외교부의 이런 논리가 얼마나 허술한지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법무부는 한-미 협정을 미국의 ‘2004년 투자협정 모델’이 반영된 특수한 유형이라고 분석했다. 주로 미국식 법원칙과 관행, 판례를 담고 있어 그대로 시행할 경우 우리의 법체계와 충돌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헌법은 인정하지 않는 ‘간접수용’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나, 투자계약이나 투자인가 위반까지 소송 대상으로 인정한 것 등을 위험한 사례로 들었다.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대한 법무부의 분석은 그동안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에서 주장한 내용과 많이 일치한다. 외교부는 반대쪽 목소리를 허위·과장 논리라고 일축해 왔으나, 근거 없는 논리로 국민을 오도하고 협정의 본질을 숨긴 쪽은 오히려 외교부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지금이라도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위험요소를 제대로 살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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