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 비준 동의를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여야가 국회 대치를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자유무역협정 동의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은 비준 동의안 처리 시기와 방식 등을 따질 때가 아니다. 지금은 국론이 분열될 정도로 맞서 있는 이견을 좁히기 위한 논의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여당은 국회에서 끝장토론을 벌이는 등 이미 충분히 논의했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토론 자체만으로 국회가 충분하게 의견수렴을 했고 협정의 여러 문제를 심사했다고 보기 어렵다. 토론에서 제기된 쟁점들에 대해 시비를 가리고, 보완대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끝장토론 이후에도 이견이 전혀 좁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비준안을 강행처리하면, 토론이 여당의 강행처리를 위한 요식절차에 불과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쟁점으로 떠오른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는 특히 그렇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둘러싼 양쪽의 의견은 완전히 반대다. 같은 사안을 놓고 상반된 태도를 보인다는 건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이 조항이 협정 비준의 최대 관건이 된 만큼 여야는 별도 논의기구를 만들어서라도 심도있는 토론을 벌여 최대한 이견을 좁혀야 한다.
투자자-국가 소송제 갈등이 첨예화한 것은 정부·여당 쪽의 비현실적인 주장 탓이 크다. 소송제가 미국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에 필요한 제도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는 협정 내용과도 맞지 않는 현실성이 없는 논리다. 미국은 기업활동 규제 권한이 연방정부가 아닌 주정부에 있다. 그런데 미국 주정부의 모든 규제는 이번 협정에서 포괄적으로 유보를 인정받았다. 한국 기업과 투자자들이 불이익을 당해도 주정부의 규제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 돼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기업들이 어떻게 이 제도를 활용한단 말인가.
이런 조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민들은 이제야 협정의 구체적인 내용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단계다. 다양한 방식의 논의를 더 진전시켜 협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넓혀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미국이 통과시켰다고 우리도 서둘러 처리해야 할 상황은 더더욱 아니다. 정부·여당이 국민들의 이런 요구를 억누르고 비준안을 강행처리할 경우, 범국민적인 거센 저항에 부닥칠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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