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임기가 3월 말 만료된다. 새 총재 인선을 앞두고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장, 김종창 금융감독원장, 김중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 등이 물망에 오르내린다. 하지만 걱정이 앞선다. 이들이 정부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한은의 독립성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한겨레> 설문조사에서 경제전문가들은 한은 총재 선임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독립성과 전문성을 각각 1·2위로 꼽았다. 정부 정책과의 조화는 5위에 그쳤다. 당연한 일이다. 한은 총재는 정책금리를 결정하는 통화신용정책의 최고 수장이자 위기 때 금융시스템을 지키는 최후의 안전판이다. 독립성 확보가 국가경제 운용의 안정적 초석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새 총재를 임명해야 할 이명박 대통령의 인식은 한참 어긋나 있다. 그는 지난달 초 금융통화위원회의 정책금리 결정을 하루 앞두고 ‘상반기 중 출구전략은 없다’고 직접적으로 한은에 압력을 넣었다. 지난달 말에는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한은 총재도 시장 같은 곳을 찾아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경기가 나쁘니 출구전략을 삼가라는 뜻이다. 답답한 일이다. 누구보다 실물경제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이 한은 총재다. 자신이 임명했다고 한은 통화정책에 마음대로 개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정부는 항상 단기 성과에 집착하려는 경향이 있다. 대통령은 어떻게든 임기 5년 안에 성과를 내려고 한다. 금리인하로 손쉽게 성과를 내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정부 관료들도 마찬가지다.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데 주력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금리인상을 반기지 않는다. 한은이 적절한 때 금리를 올리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경제 안정 기조가 무너질 수 있다. 그렇게 생긴 거품이 어떤 사태를 불러오는지는 금융위기가 똑똑히 보여주었다.
한은 총재는 통화신용정책 운용에서 정부와 분명히 거리를 둬야 한다. 당장은 불편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나라경제를 건실하게 다지는 일이다. 그런 뜻에서 최근 논의되는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 주장은 충분히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번에 도입이 어렵다면 우선 새 총재만이라도 중립적인 사람을 앉히고,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대통령이 측근이나 말 잘 듣는 관료를 총재로 앉혀 한은을 휘두르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나라경제를 좀먹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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