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군포 연쇄살인 사건으로 용산 참사를 덮으라는 내용의 ‘홍보지침’을 청와대 행정관이 경찰청에 내려보냈다는 의혹이 번지고 있다. 김유정 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처음 제기한 이 의혹은 아직 진위가 정확히 확인되진 않았지만, 청와대와 경찰청의 모호한 반응을 보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무리 인권에 둔감한 정권이라고 하지만, 시민·경찰이 여섯 사람이나 숨진 사건을 덮기 위해 연쇄살인 사건을 활용하겠다는 발상을 하고 그걸 실행에 옮겼다는 건 좀처럼 믿기 어렵다. 그러나 전자우편(이메일)을 보낸 사람이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 행정관’이라고 적시돼 있고, 그 내용까지 구체적으로 거론되는 걸 보면, 청와대나 경찰청이 발뺌한다고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하면 우선 진실을 분명하게 밝히는 게 중요하고 시급하다. 청와대와 경찰청은 조금이라도 사건을 숨기거나 축소할 생각을 하지 말고, 사실 여부를 명명백백하게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전자우편을 보냈다면 누구 지시로 보낸 건지, 누구한테까지 보고가 올라갔는지도 밝혀져야 한다.
전자우편 내용을 읽어보면, 청와대의 시국인식이 얼마나 비뚤어져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용산 참사에서, 그리고 흉악한 연쇄살인범의 손에서 숨져간 시민과 가족들의 아픔은 현정권의 안중엔 없는 모양이다. 정권 안위와 촛불시위 방지를 위해선 국민의 아픔도 정치적 홍보의 수단으로 전락할 뿐이다. 용산 참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 정권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익히 봐 왔지만 경찰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지시를 내릴 정도로 도덕성이 땅에 떨어졌을까, 새삼 아연할 따름이다.
전자우편에 언급된 ‘언론에 계속 기삿거리를 제공해 (용산 사태로 인한) 촛불을 차단하는 데 만전을 기해 달라’는 대목은, 청와대가 촛불 강박증에 갇혀 있다는 걸 드러내 준다. 모든 사안을 촛불과 연결시키고 오직 촛불시위 차단에만 온 신경을 쏟으면 국정 운영이 정상적으로 될 리가 없다. 경제를 살리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인데도 비판세력을 옥죄는 ‘이념 법안’ 입법에만 매달리는 이유도 이제야 알 것 같다. 더 안타까운 건, 이런 전자우편이 존재한다는 폭로가 나오자 많은 사람이 ‘충분히 그럴 것’이라고 수긍하는 현실이다. 정권의 신뢰가 이렇게 땅에 떨어졌는데, 청와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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