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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등록 2008-12-31 20:07

지난 20년 동안 한국 사회를 지탱해 온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감 속에서 우리는 2009년 새해 아침을 맞는다. 집권세력은 경제 살리기라는 핑계로 표현과 집회의 자유 같은 국민 기본권조차 함부로 제약하려 든다. 여야가 합의해 처리해야 할 중대한 법안조차도 힘으로 밀어붙인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다양성이 부정되고 획일적 가치가 강요당한다. 경제가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개발독재 시대 이데올로기가 꿈틀거린다. 100년에 한 번 있다는 최악의 경제불황 여파로 나라경제의 기반이 크게 흔들리는 위기상황에서도 현정권은 국민과 야당을 상대로 이념 전쟁에 골몰한다.

이런 분열의 정치는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통합의 구심점이 되어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국민적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국난 때마다 기꺼이 힘을 보태고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자세로 위기를 극복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온국민이 장롱 속 결혼반지와 돌반지를 들고 나와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했다. 태안반도 앞바다를 기름이 뒤덮었을 때 살을 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수백만이 달려가 기름을 닦아냈다. 현재 많은 국민이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크게 실망하면서도 기대를 접지 않는 것은 그가 약속한 대로 국민통합을 실현할 경우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적 리더십이 경제 살려

그러나 이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이 이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철권통치로 일관할 경우 거센 국민적 저항에 부닥칠 것임이 불을 보듯 뻔하다. 군사독재를 30년에 걸친 끈질긴 민주화 투쟁을 통해 끝낸 바 있는 한국의 민중은 도탄에 빠진 민생을 외면하고 민주주의 파괴에 몰두하는 정권을 응징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정권이 파국을 맞지 않으려면 국정의 대전환이 요구되지만 이는 이 대통령의 각성과 성찰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새해를 맞아 이 대통령이 앞장서서 진정한 사회통합의 정치를 펼쳐주기를 바란다. 사회통합은 지도자가 도덕적 권위를 회복하고 민주적 지도력을 발휘할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이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은 30%의 고정 지지층을 결집할 경우 난국을 돌파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이는 착각이며 위험한 발상이다. 이 대통령은 민주적 리더십이 없으면 경제 살리기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경제위기 해법에서도 이 대통령은 소수의 대기업·부유층·수도권 육성에 중점을 두는 경제정책의 기조를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취약한 내수기반 확대가 시급한 상황에서 이런 정책들은 일자리 만들기에는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4대강 정비사업 등과 같은 대형 토목사업에 대한 과도한 재정투자도 문제다. 이 사업은 단기적으로 반짝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비생산적인 부문에 14조원이라는 막대한 재원을 소모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기반을 갉아먹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최악의 불황으로 빠뜨린 이후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다극체제로 바뀌어 가는 등 세계질서에도 큰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국제질서의 변화는 한-미 동맹 위주의 외교노선을 추구하는 현정부에 기존의 외교전략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구한다. 외교가 내치의 연장이라고 할 때 현정부가 새로운 외교환경에 신속히 적응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국민 지지를 결집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국민적 신뢰를 어떻게 회복하느냐는 문제다.

개혁·진보진영 연대 절실

모든 공식 대화창구가 단절될 정도로 극도로 악화한 남북관계의 개선도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정부가 남북관계를 현재처럼 경색된 상태로 두고서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행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에서 오바마 정부가 1월 출범할 경우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주변국들은 6자 회담과 같은 다자주의 틀에서 북핵 문제를 비롯한 동북아 지역 문제를 다루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새로운 흐름에서 우리가 고립되지 않도록 하려면 하루빨리 남북관계 돌파구 마련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

민주주의는 구호만으로 지킬 수 없다. 민주주의 훼손을 방관하는 정치적 냉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개혁·진보진영의 연대는 절실하다. 그 연대는 지난 10년 동안 민생 대안 마련에 무기력했던 기성 정치권뿐만 아니라 시민사회가 광범위하게 참여함으로써 사회적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 청년실업 등 핵심적 민생 현안을 풀어갈 구체적 실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적 지지를 결집할 수 있으며 그 힘을 바탕으로 민주주의 파괴 기도도 제동을 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불황한파 속에서도 사회 곳곳에서 소리 없이 전개되는 희망나눔 움직임에서 우리는 큰 위안을 느낀다. 크고작은 나눔들이 모여 공동체의 희망을 창조한다. 시민들이 거리에서 겨울의 칼바람을 맞으면서 들고 있는 촛불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자 각오다. 새해를 맞아 우리는 독자들에게 나눔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동시에 민주주의의 파수꾼으로서 권력을 감시하고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더욱 충실하게 수행할 것임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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