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 쇠고기 협상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함께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쇠고기 협상을 무효화하라는 서명에 참여한 누리꾼이 수십만명에 이르며, 대통령 탄핵 서명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어제 정부가 쇠고기 협상은 국제적 기준에 따라 이뤄졌다고 불끄기에 나섰지만 서명 열기는 사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이번 사태는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검역주권을 포기한 졸속 협상을 한 탓에 안전성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국민의 건강과 축산농가의 생존권에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을 두고 사려 깊지 못한 발언을 잇달아 함으로써 국민 불신만 더 키웠다.
농림수산식품부는 협상이 국제적 기준과 과학적 근거에 따라 이뤄졌다고 해명했으나 정작 수입 위생조건 개정안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수입 위생조건 개정안은 정식 입법예고까지 한 만큼, 비공개 사유는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의 해명도 미국산 쇠고기는 미국 국민은 물론 미국을 여행하는 많은 여행객들이 먹고 있고, 우리가 승인하는 도축장에서 작업한 것만 수입된다는 내용으로, 핵심을 벗어나 있다.
미국은 지난해 광우병 위험 통제국 판정을 받았지만 국제수역 사무국이 권고한 동물성 사료 금지 조처 개선은 이행하지 않고 있다. 곧 광우병 위험이 가시지 않았는데도, 낮은 수준의 동물성 사료 금지 조처를 시행하는 시점도 아니고 공포하는 선에서 거의 제한 없이 들여오기로 한 데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추가로 광우병이 발생해도 우리 정부가 수입이나 검역을 중단할 수 없도록 수입 위생조건을 내준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 소비자 단체에서도 광우병 위험을 경고하는데, 우리가 직접 관리하지도 않으면서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해석하는 것은, 안전성에 대한 기준을 최소한으로 낮출 때나 가능한 일이다.
이 대통령은 ‘쇠고기 협상은 전 정권의 약속에 따른 것’, ‘문제가 있으면 안 사 먹으면 된다’고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말을 해 논란을 키웠다. 시민들이 이런 이유로 분노를 표출하는데 이 대통령은 정치 논리가 광우병 불안을 키운다고 화살을 돌리고 있다. 정부는 쇠고기 협상의 진상을 밝히고 재협상을 통해 검역주권을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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