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법무부가 여성 재소자 성추행·자살 사건에 대한 국가배상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가 뒤늦게 항소를 취하하기로 했다. 김성호 법무부 장관은 어제 항소의 실익이 거의 없고 국가의 불법행위로 말미암은 피해자들의 고통을 신속히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항소 취하를 지시했다. 비판 여론이 일자 나온 조처다. 비록 항소 한달여 만의 뒤늦은 결정이지만 환영할 일이다. 문제가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바로잡는 것이 옳다.
비록 잘못을 고쳤지만, 문제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은 올해 초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여성 재소자가 교도관한테 성추행을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사회적 공분을 산 일이었다. 법무부의 진상조사를 거쳐 문제의 교도관은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고, 유족들은 지난 9월 1억7천만원의 국가배상 판결을 받았다.
국가를 대표해 소송을 맡은 서울고검은 애초 항소하면서, 국가의 책임을 80%로 산정한 것이 과중하고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기 위해서 항소가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이들한테는 금전적 배상이 많고 적음을 다투는 것 자체가 또다른 고통이요 슬픔이다. 가해자인 국가가 피해자와 유족들의 상처를 헤집어서야 말이 되는가. 유족들은 법무부 장관까지 찾아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해놓고 뒤늦게 진실을 덮으려 한다고 분노했다.
특히 항소이유서를 보면, 당시 구치소 쪽이 피해자한테 합의를 종용하는 한편 사건을 축소·은폐하려다 자살 가능성을 방치한 사실 등을 모두 “사실과 다르다”거나, “사실을 오인한 것”이라고 했다. 성추행 행위를 제외한 핵심적인 범죄 사실 대부분을 부인한 것이었다. 국가가 배상할 책임이 거의 없다는 취지와 다를 바 없었다. 이런 잘못이 꼭 장관의 지시가 있어야 고쳐지는지 아쉬울 따름이다.
이런 일이 빚어지는 건, 국가가 소송에서 졌을 때 항소·항고하는 것을 관행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국가의 불법행위가 명백히 인정되면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항소·항고를 포기하는 게 도리다. 특히 공권력을 집행하는 공무원이 직위를 이용해 저지른 불법은 공권력의 정당성을 위협하는 중대 사안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엄벌해야 할 명백한 범죄 행위를 국가가 나서서 관행적으로 변호해주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