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뉴라이트 학자들이 또 하나의 정치적 팸플릿을 ‘한국근현대사 대안교과서’라는 이름으로 내놨다. 예상대로 일제의 식민지배를 근대화 과정으로, 5·16 쿠데타를 5월 혁명으로, 유신체제는 행정 집행력을 제고한 체제로 미화했다. 국권을 병탄하고, 국민주권을 부정하며, 인권을 유린하고, 전체주의를 추구했던 집단을 찬미하는 파시스트의 역사관을 고스란히 답습했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통해 정체성의 일단을 드러낸 데 이어, 이번 기회에 정통 수구세력의 적통이라는 전모를 선포한 셈이다. 우리의 극우·수구세력은 일제 강점기 침략자의 아전 노릇을 하다가 해방 후 지배권력으로 등장해, 40여년 독재체제를 유지해 온 인물들로, 친일·매판· 수구·사대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그 상징적 인물이 관동군 장교 출신 박정희다. 이들은 바로 박정희를 한국 근현대사의 우뚝 선 중심으로 세웠다.
사실 이 책자는 학문적 토론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수준이 낮다. 정치적 입씨름용일 뿐이다. 다만 정치적 신보수주의 바람에 편승해 혹세무민할 우려가 있어 경계할 뿐이다. 이 책자 저자들에겐 역사의 기술과 평가의 기준이란 게 없다.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독재와 인권유린을 예찬하고, 시장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듯하면서도 국가 동원체제의 효율성을 찬미한다. 자유주의를 앞세우면서도 자유·인권·민주주의 등 보편적 가치를 외면한다. 시민의 권리보다는 국가의 통제를, 민족의 자결권보다는 강자에의 예속을 추구한다. 언론의 자유를 내세우면서도 언론 강제폐간과 통폐합을 정당화한다. 책자 곳곳에서 정신병증이 느껴지는 것은 이런 착종 때문이다. 이들이 예찬한 요소들을 합쳐보면 북한체제가 그려진다.
그런 이들이 4·19 혁명, 6월항쟁, 그리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의미를 어떻게 제대로 평가할까. 이들은 이 사건들을 단순한 학생운동, 집권세력의 결단, 반미 극단주의 확산 계기로 폄하했다. 효율성과 성장을 위해선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희생시킬 수 있다는 이들의 소신에 비추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백번 양보하더라도 학자로서 최소한의 금도는 지켜야 한다. 조직원끼리 학습할 내용의 책자를 교과서로 출간해, 학생들에게 주입시키려고 해선 안 된다. 검증된 지식조차 비판적으로 보는 관점을 가르쳐야 하는 게 선생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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