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장하성 펀드’로 불리는 한국기업지배구조 개선 펀드가 본격적인 투자 활동에 나섰다. 소액주주 운동을 이끌어 온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주도한 일이다. 국내 기업의 후진적 지배구조 개선에 앞장서겠다는 게 펀드가 내건 깃발이다. 태광그룹 계열인 대한화섬 지분 5.15%를 경영참여 목적으로 확보했다고 공시했고, 다른 서너 기업 지분도 일부 확보했다고 한다. 그릇된 지배구조 탓에 기업가치가 낮게 평가돼 있는 기업들이라고 한다.
장하성 펀드는 시민운동과 자본 논리의 접목점에 있다. 자본 외곽에서 머물지 않고 자본시장에 뛰어 들어 시장개혁을 일궈 내겠다는 뜻있는 시도다. 펀드가 성공적 투자모델을 만들고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본받는다면, 한국 자본시장이 한단계 성숙하는 전기가 될 수 있다. 낙후된 지배구조 탓에 기업 가치가 저평가돼 온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줄고, 소액주주 권익도 한층 신장될 수 있을 게다.
뜻은 좋게 여겨지나 꺼림칙함도 떨칠 수 없다. 시장 감시자이던 시민운동 주체가 자본시장 참여자가 된 건, 스스로 칼날을 잡은 격이기도 하다. 자본은 수익을 쫓기 마련이다. 돈이 오가는 속에서도 목적의 순수성을 지켜낼 수 있을지 여부가, 장하성 펀드, 나아가 시민운동 중심 세력에 대한 평가를 극에서 극으로 바뀌게 할 수도 있다.
초기 투자자와 운용자가 모두 외국계란 점은 더 큰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지금까지 들어온 1300여억원은 모두 외국계고, 운용은 미국 투자자문사인 라자드에셋매니지먼트가 맡았다. 국내 자본이 투자를 꺼린 탓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목적이 옳다 해도 수단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사례를 자주 봐 왔다. 외국자본 힘으로 국내에서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나선 게 국민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 가벼이 생각해선 안 된다. 펀드에 딜레마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운용이 성공하면 외국자본에 큰 이익을 안겨줘 반외국자본 정서 칼날이 장 교수를 비롯한 시민운동 쪽을 향할 수도 있다. 시민단체의 기업 지배구조 개선 노력을 곱지 않게 봐온 쪽에서는 에스케이를 공격한 소버린자산운용과 별반 다르지 않다며, 이를 공세 빌미로 삼고 있다. 국내 자금 유치에 더욱 힘쓰고 살얼음 위를 걷듯 편드 운용에 세심하게 신경 써, 소액주주 운동 이상의 성과를 거두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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