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오는 10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차 협상을 앞두고 반대 목소리에 힘이 더해지고 있다. 서울에서 열려서만은 아니다. 전초전인 1차 협상과 달리 2차 협상에서는 한·미 양쪽의 양허안이 교환된다. 협정 뼈대가 잡힐 수도 있는 중대 고비다.
농민과 노동자, 시민단체뿐이 아니다. 경제학자 171명과 농업경제학자 45명도 각기 협상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참여정부 핵심 자리나 정책 자문단에서 활동했거나 활동 중인 경제학자도 여럿 성명서에 서명했다. 종교인, 여성단체도 반대 뜻 천명이나 시위에 잇따라 참여하고 있다. 대표적 경제학자로 꼽히는 조순 전 경제부총리와 정운찬 서울대 총장 역시 협정 체결은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정치권에서도 찬반 의견이 맞서 있다. 나라가 갈라지고 있다. 이런 대가를 치르고도 밀고 나갈 만큼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화급한 일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라가 분열돼가는 소리가 정부한테는 ‘쇠귀에 경읽기’쯤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 듯하다. 어제 6개 관계부처 장관이 낸 공동 담화문은 정부 인식 수준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일부 취약 부문에서는 어느 정도 피해”, “일부 단체에서 시위를 준비 중”이라는 대목에서는 반대 여론을 일부 계층의 딴죽걸기 정도로 폄하하는 태도가 역력하다. 기껏 “폭력시위 등 불법 행위는 엄중히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엄포나 놓고 있다.
정부는 상황을 똑바로 봐야 한다. 일부의 반대도, 비전문가들의 막연한 불안감 발로도 아니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52%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면 한국이 손해볼 것이라고 내다봤으며, 90%가 협상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사회 시스템과 경쟁력을 한단계 높일 것이라는 추상적 강변이나, 입맛에 맞는 자료를 꿰맞춰 득실을 재는 식으론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1차 협상 내용도 공개하지 않으면서 “어떠한 의견도 겸허히 수렴해 협상에 반영하겠다”고 하는 건 기만이다.
평화적 시위를 바라는 마음이야 한가지겠지만, 그 전에 정부부터 귀를 여는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우리 삶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생존권적, 생활권적 기본권까지 침해할 수 있는 일을 독단적으로 밀고 나갈 권한은 정부한테 있지 않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