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우박을 맞고 비상착륙한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사고 당시 운항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항공사 쪽은 왜 비구름을 피하지 못했느냐는 의문이 커지자 “여객기가 활주로에 접근하는 단계였고 주변의 비행금지구역 때문에 충분히 피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해명만 놓고 봐도, 비구름에서 최소한 10~20마일 이상 충분한 거리를 두고 돌아가는 회피 비행 규정을 어긴 것이다.
사고기는 지상 3000m 비행 때 기체 앞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조종실 앞유리창이 깨지는 아찔한 상황에서 비상착륙을 했다. 조종사와 승무원의 침착한 대응 덕분에 대형사고를 면한 건 천만다행이나, 조종사의 판단 착오나 불충분한 회피 비행 탓에 사고를 자초했다면 문제는 다르다. 사고 시간대에 같은 항로를 운행한 다른 여객기들이 서해상으로 충분한 거리를 두고 회피 비행을 했지만 사고기는 유독 동쪽으로 비구름 가까이 운행하다 사고를 당했다. 그뿐만 아니라 기체 결함 흔적이 발견됐고, 사고 직후 비구름을 통과하려 무리하게 과속을 한 의혹도 있다고 한다.
항공 사고는 정확한 원인 규명이 생명이다. 조그만 가능성도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순간적인 실수 하나로 대형 참사를 부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항공사 쪽은 무리한 비행 사실을 입 다문 채 비상착륙에 성공한 점만 선전했고, 조종사 포상을 서둘렀다. 신뢰 추락을 우려해 이런 식으로 과실을 덮으려 하는 건 국민들을 기만하는 행위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사고 경위와 원인을 밝히는 건 당국의 몫이다. 건설교통부는 조종사 포상을 검토하겠다고 거들고 나서기 전에, 조종사의 판단 착오나 운항 규정 위반이 있었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조종사들 말로는 빠듯한 운항 일정 등을 이유로 웬만하면 비구름을 뚫고 운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인천공항이 생긴 뒤로는 우회 비행이 훨씬 까다로워진 탓에 갑작스런 기상 변화에 대비할 폭이 좁다는 증언도 나온다. 사실이라면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다. 갑작스런 기상 변화에 대응하는 운항 규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비상 상황에 대비한 관제 시스템에는 별 문제가 없는지 걱정스럽다. 당국은 이번 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는 것과 동시에 승객의 안전을 위협하는 잘못된 관행과 시스템도 서둘러 점검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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