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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주권 침해하는 미국의 ‘약값정책 간섭’

등록 2006-05-04 21:45수정 2006-06-08 12:00

사설
미국 정부 관리가 “한국 정부의 새로운 약값 정책이 다국적 제약회사에 불리하다”며 정책 재검토를 강력히 요청했다고 한다. 미국이 자국 의약품의 특허와 판매 이익을 높이려 기를 쓴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의 보건의료 정책까지 노골적으로 간섭하는 데 이르러서는 어처구니가 없다. 부당한 압력과 외교적 결례를 넘어 심각한 주권침해가 아닐 수 없다.

그제 보건당국이 발표한 새 약값 정책은 비용이나 효능면에서 우수한 약을 선별해 건강보험에 적용하는 한편, 약값을 건강보험공단과 제약회사가 협상을 통해 결정하겠다는 게 뼈대다. 구체적 실행계획이 다소 미흡하지만, 지금보다 값싸고 질 좋은 약을 공급하겠다는 긍정적 방향이다.

사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가장 유리한 건 다국적 제약사들이다. 대부분의 특허약은 무난히 보험약으로 등록되겠지만 국내 복제약 시장은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국내 제약업계가 자본력이 센 다국적 제약사한테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며 항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새 약값 정책을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건, 특허약에 대한 가격 협상권을 정부(공단)가 가질 경우 보험 등재가 까다로워지고 약값이 낮아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철저히 다국적 제약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셈법이요, 국내 의료 소비자의 비용 부담과 건강권은 전혀 안중에 없는 셈이다. 우리와 비슷한 약값 정책을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약값 부담이 높아진 전례를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끈질긴 요구로 약값 결정권을 다국적 제약사에 상당 부분 양보한 탓이다.

미국 정부는 몇 해 전부터 ‘의약품 실무회의’라는 걸 통해 ‘약값 인하’에 초점을 맞춘 우리 정부의 정책을 집요하게 문제삼아 왔다. 미국 관리들이 노골적으로 정책 간섭에 나선 건 다음달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에서 약값 문제에 얼마나 사활을 걸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는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한 한 나라의 정책을 고쳐 달라고 말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일축했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부적절한 미국의 요구와 압력을 수용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온 정부가 얼마나 당당한 협상력을 보일지 의심스럽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 달린 의약품 정책이 부당하고 오만한 미국의 압력에 흔들리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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