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9일 새해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지난 5일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배우자 비호’를 위해 남용했다는 비판이 거세지만, 윤 대통령은 책임 있는 해명도 사과도 않은 채 모른 체하는 형국이다. 윤 대통령의 무책임한 침묵이 ‘여사 리스크’를 더 키우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올해를) 민생 회복의 해로 만들어야 한다”며 “모든 부처가 국민 앞에서 벽을 허물고 원팀이 돼 신속하고 확실하게 과제를 해결해나가기 바란다”고 했다. 또 “좋은 정책을 만들고 발표하는 것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며 장관들에게 정책 홍보에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대통령이 민생을 우선순위에 두고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빠진 것은 국민적 관심사인 김건희 특검법과 거부권 행사에 대한 윤 대통령 본인의 ‘설명 의무’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국회 입법권을 침해할 수 있는 만큼 매우 제한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 또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은 검찰의 소극적 태도로 제대로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는 응답이 60%를 넘어서기도 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이 민심을 거슬러 거부권을 ‘가족 방탄용’으로 사유화했다면,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고 사과하는 것이 합당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 이유도 이관섭 비서실장의 입을 빌렸고, 법무부는 대통령실 논리를 그대로 가져온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대통령실과 내각이 윤 대통령 ‘대변인’으로 동원된 셈이다. 지난해 양곡관리법 개정안,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때는 윤 대통령이 그 사유를 직접 밝힌 바 있다.
김 여사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은 그간 김 여사 관련 의혹에 대해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보여온 행태에 기인한 면이 크다. 김 여사에 대한 크고 작은 논란이 여러번 제기됐지만, 윤 대통령은 단 한번도 제대로 해명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 시간 끌기와 모르쇠로 일관해 불신을 자초했다. 그러니 여권에서조차 70%에 이르는 김건희 특검법 찬성 여론이 “김 여사 리스크를 고려한 수치”(김경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김 여사 의혹도 문제지만, 그에 대처하는 윤 대통령의 무책임 처신이 또 다른 국정 리스크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