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해 감사원장이 신년사에서 “지난해 감사원 안팎에서 제기된 오해와 왜곡들을 잘 극복해내는 한편, 국민으로부터 많은 관심과 응원을 받았다”고 했다고 한다.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궤변이다. 감사원이 지난해 ‘전현희 표적 감사’ 혐의로 개원 이래 처음으로 압수수색을 당하고, 최 감사원장을 포함한 고위 간부들이 피의자 신분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를 받은 사실은 누구라도 다 안다. 국가 최고 감찰기구의 망신을 자초한 책임자의 상황 인식이 이런 정도라니, 기가 찰 뿐이다.
최 감사원장은 한술 더 떠 “헌법과 감사원법이 부여한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고히 하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감사원이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과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 전 정권에서 임명된 인사들을 찍어내기 위한 감사를 한 것을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현 정부 들어 감사원은 ‘정권의 돌격대’라고 조롱을 당할 정도로 독립성과 중립성이 감사원 개원 이래 가장 크게 훼손됐다. 최 감사원장은 유병호 사무총장과 함께 이런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다. ‘전현희 표적 감사’는 감사원 사무처가 주심인 조은석 감사위원의 전자결재를 조작하는 등 조직적인 위법 행위로 드러났다. 지난달 유 사무총장을 소환조사한 공수처는 최 감사원장이 위법 행위를 지시했는지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 최 원장은 자기 입으로 국회에서 “감사원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말했다가, 여당 소속 법제사법위원장으로부터도 “귀를 의심케 한다”는 핀잔까지 들었다. 그런 사람이 “감사원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고히 했다”고 자화자찬을 하다니, 부끄러움도 모르는가.
최 감사원장이 “국가 통계조작 사건 등에 대한 엄정한 감사를 통해 국가의 기본질서를 바로잡는 데 기여했다”고 한 것도 어이가 없다. 감사원의 최고의결기구는 감사위원회의다. ‘통계조작’ 의혹은 아직 감사위원회의 의결도 거치지 않았다. 감사원 사무처가 ‘중간발표’랍시고 일방적인 주장을 발표했을 뿐이다. 법원 판결도 나오기 전에 검찰 기소만 보고 범죄를 소탕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헌법과 감사원법에 규정된 기관 운영 원칙을 무시하면서 어떻게 헌법기관장이라 할 수 있나. 이러니 감사원 내부에서조차 신년사를 두고 “감사원장의 정신승리”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 아닌가. 최 감사원장은 “총선에 즈음해 공직기강이 느슨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는데, 남 말 할 때가 아님을 알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