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의 구인정보 게시판에 주 52시간을 기본으로 한 근로시간이 적혀 있다. 연합뉴스
주간 단위로 52시간 이하 근무를 유지한다면, 하루에 얼마를 근무해도 법 위반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연장근로 한도 위반’을 하루 단위가 아닌 주 단위로 본다는 법원 해석이 나온 건 처음이다. 이 경우, 극단적으로는 하루 최대 21.5시간 근무도 합법이 될 수 있어 노동자의 건강권을 심대하게 침해하는 동시에, 노동시간을 줄여나가는 시대상에도 맞지 않는 퇴행적 판결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 7일 근로기준법·근로자퇴직급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항공기 객실 청소업체 대표 ㄱ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일부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ㄱ씨가 운영하는 회사 노동자가 하루에 15시간을 일하는 등 근로기준법이 정한 ‘하루 근로시간 한도’(8시간)를 초과해 근무한 적이 많았으나, 법원은 주간 단위로 52시간을 넘지 않으면 근로기준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근로기준법은 주간 근로시간 한도를 40시간, 하루 근로시간 한도를 8시간으로 정하되, 당사자 간 합의로 1주 12시간 한도 연장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그동안 하루 8시간을 초과하는 근무를 ‘연장근로’로 규정해, 연장근로가 12시간을 넘으면 주간 단위 근로시간이 52시간을 넘지 않아도 법 위반으로 적용해왔다. 그런데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이 기준이 허물어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제조업 생산라인, 야간 경비, 요양보호시설, 물류, 운수 등 연장근로가 많은 업종에서 집중근로가 더욱 용이해질 수 있다. 불규칙한 집중근로가 잦을 경우, 심혈관계 질환 우려 등 노동자 건강에 큰 위협 요소가 된다. 대법원이 법조문 문구에 얽매여 입법 취지는 도외시한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하루 8시간 근무는 1919년 국제노동기구(ILO) 출범 당시 1호 협약일 정도로 가장 기본적인 근로조건이다. 우리나라가 1953년 근로기준법을 제정할 때도 이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역사를 어디까지 뒤로 돌려놓는 것인가.
이번 선고는 근로기준법상 하루 단위 연장근로 시간 최대치를 명확히 정하지 않은 입법 공백이 초래한 측면이 크다. 이번 선고를 계기로 국회는 주 11시간 연속휴식 등 일 단위 연장근로 상한 규정 입법화에 적극 나서 더 이상 이런 시대착오적 논란이 빚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