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국빈 방문을 떠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환송하러 나온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11일 빈손으로 자진 해산했다. 당 지도부가 혁신안 대부분을 수용하지 않고 시간만 끌자 애초 시한인 24일보다 2주 가까이 앞당겨 활동을 끝낸 것이다. 지난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를 계기로 거듭나겠다던 국민의힘의 약속은 결국 지도부의 책임 모면용 시간 때우기였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혁신위는 이날 마지막 회의를 열고 6호 혁신안을 의결했다. 친윤 지도부와 중진 등 당 주류에 내년 총선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를 요구하는 내용이다. 김기현 대표는 수용 여부를 밝히지 않은 채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사즉생의 각오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시기나 방법은 언급하지 않았으니, 하나 마나 한 말이다. 김 대표는 혁신위가 앞서 의결한 다섯개 혁신안 중 이준석 전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한 징계 취소만 수용했다. 나머지 국회의원 특권 폐지, 청년·비례 대표 할당, 전략공천 원천 배제, 과학기술인 공천 확대 등은 모두 무시했다. 6호 혁신안의 운명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혁신위의 ‘빈손 해산’에는 인요한 위원장의 잘못이 크다. 임명되자마자 연일 “처자식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 “당에 필요한 쓴 약을 조제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복안 없이 말만 앞세웠다. 특히 보선 참패의 근본 원인인 대통령과 당의 종속적 관계에 대해선 “나라님” 운운하며 시작부터 선을 그었다. 혁신의 대의명분을 스스로 내려놓아 동력 상실을 자초한 것이다. ‘여의도 출장소’라는 화근은 못 본 척 눈을 가리고 자잘한 증상들만 손대니 ‘수술’이 성공할 리 없지 않은가.
그러나 더 큰 책임은 김 대표가 져야 마땅하다. 보선 참패 직후 책임론에 직면하자 “전권 부여” 운운하며 혁신위를 만들고 인 위원장을 ‘모셔온’ 사람이 김 대표다. 그래 놓고 정작 자신 등을 겨냥한 혁신안이 나오자 대부분 묵살했다. 혁신의 구호는 요란했으나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일 김 대표를 불러 힘을 실어줬다. 내년 총선 공천을 총괄할 ‘공천관리위원회’를 내주 출범시켜 ‘선거 모드’로 빠르게 넘어갈 것이라고 한다. 김 대표 사퇴론이 다시 분출하고, ‘김건희 특검법’ 처리 문제가 겹치자 외부 인사 영입과 컷오프 ‘물갈이’ 등 눈요기 이벤트를 앞세워 국민 관심을 호도하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단순한 자리 보전을 넘어 국민을 기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