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10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면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30일 당 공천관리위원장 자리를 요구했으나, 김기현 대표가 곧장 이를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인요한 혁신위는 이날 당 기득권 세력의 총선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를 요구하는 혁신안을 공식 의결했지만, 이 또한 수용 여부가 불투명하다. 혁신위는 이날로 사실상 종료 수순에 들어갔다. 여당 혁신위가 대통령 국정 쇄신과 수직적 당정 관계 변화라는 본질에 대해선 한마디도 못 한 채 자리다툼만 벌이다 아무 성과 없이 막을 내리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인 위원장은 이날 혁신위 회의 뒤 “저는 이번 총선에 일체의 선출직 출마를 포기하겠다”며 “(김기현 대표가) 혁신위에 전권을 주겠다고 공언하신 말씀이 허언이 아니면 저를 공관위원장으로 추천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 위원장은 그동안 당 기득권 세력의 총선 희생과 헌신을 요구해왔다. 이날도 지도부와 중진, 친윤 의원들의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를 공식 안건으로 의결하고 다음주 최고위원회의에서 받아들이라고 요구했다. 그 연장선에서 자신이 공관위원장이 돼 당내 기득권 세력을 공천에서 쳐내겠다는 의사를 밝힌 셈이다.
그러나 김 대표는 곧바로 “인 위원장이 공관위원장이 되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혁신위) 활동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일축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김 대표가 인 위원장 요구를 거절한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혁신위원장이 공공연히 자리를 요구하고 당대표는 대놓고 거절하는 볼썽사나운 자리다툼이 아무런 여과 없이 중계된 것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10월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로 민심의 최후통첩을 받았다. 그런데 불과 한달 보름여 만에 혁신위원장과 그를 임명한 당대표가 총선 공천권을 두고 알량한 권력다툼을 벌이고 있다. 혹시라도 여당이 민심의 경고를 새기고 변화 조짐을 보일까 지켜보는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찾아볼 수 없다.
애초 혁신위 스스로가 국정기조 변화와 대통령에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당정 관계 정립이라는 본질적 과제에 눈감은 채 변죽만 울린 결과다. 심지어 인 위원장은 “대통령에게서 거침없이 하라는 신호가 왔다”고 과시하기까지 했다. 공천 국면에서 ‘윤심’의 전위대 노릇을 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과 다를 게 없다. 김 대표 역시 자신을 향한 퇴진 요구를 불 끄기 할 용도로 혁신위를 내세웠을 뿐이었음이 분명해졌다. 여당의 요란했던 혁신쇼가 막장 권력다툼으로 막을 내리는 현실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