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가 다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는 가운데 연체율을 비롯한 부실 지표는 나빠지고 있다. 여러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끌어모아 코로나19 사태와 경기 부진을 버텨온 자영업 다중채무자들도 크게 늘고 있다. 인플레가 좀처럼 잡히지 않아 고금리 장기화가 불가피해진 상황에서 개인 신용의 양과 질이 모두 악화하는 모양새여서 대단히 우려스럽다.
한국은행이 21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9월 말 기준 가계대출은 전분기 말 대비 11조7천억원 증가한 1759조1천억원으로 2분기(+8조7천억원)보다 증가 폭을 크게 키웠다.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해 2분기 이후 역대 최대치다. 주택담보대출은 전분기 대비 17조3천억원 늘어난 1049조1천억원으로 지난 분기 기록했던 역대 최대치를 또 갈아치웠다. 정부의 엇박자 정책과 집값 떠받치기가 이른바 ‘영끌 심리’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가계의 신용위기 신호는 뚜렷해지고 있다. 22일 금융감독원 발표를 보면, 지난 9월 말 국내 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0.35%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0.16%포인트 올랐다. 9월 말 주택담보대출 연체율도 전년 동기 대비 0.12%포인트 상승했다. 카드빚 돌려막기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달 신용카드 9개사의 카드론 대환대출 잔액은 1조4903억원으로, 직전 달인 9월(1조4014억원)보다 6.3% 증가했고, 1년 전인 지난해 10월(1조101억원)과 비교하면 47.5%나 늘었다. 카드사 연체율도 2%를 넘었다.
자영업 다중채무자 수와 대출 잔액도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22일 한국은행이 양경숙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올해 2분기 말(6월) 현재 3건 이상의 대출을 받은 자영업 다중채무자는 177만8천명으로 역대 가장 많았고, 대출 잔액도 743조9천억원으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2분기 말(700조6천억원)보다 6.2% 늘어난 수치다. 1년 사이 연체액(13조2천억원)과 연체율(1.78%)은 더 크게 뛰었다.
금감원은 은행 건전성을 선제적으로 관리하고 대손충당금 적립을 유도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신용회복 지원 제도와 상생금융을 적극 활용해 부실해진 개인들의 채무 재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정부 당국은 은행이 이자 장사로 돈놀이를 한다고 말로만 질타할 게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개인들을 실질적으로 돕고, 은행의 건전성 대책도 미리미리 두텁게 관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