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지난 6월29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왼쪽은 최재해 감사원장. 연합뉴스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표적 감사’ 등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를 받고 있는 감사원 수뇌부가 해당 사건 주심인 조은석 감사위원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자신들의 위법적 행태를 반성하기는커녕 문제 제기를 한 주심 감사위원을 도리어 처벌해달라고 검찰에 들고 간 것이다. ‘도둑이 매를 든다’는 말보다 더 황당하고 파렴치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한겨레 보도를 보면 감사원은 지난 6월 ‘전현희 감사보고서’를 둘러싼 표적 감사와 ‘주심 패싱’ 등의 의혹을 조사하기 위한 티에프(TF)를 구성해 감찰에 착수했다. 앞서 조 위원은 전 전 위원장의 혐의에 대해 대부분 ‘불문’(무혐의) 결정을 내린 감사보고서를 사무처가 일방적으로 수정한 뒤 주심 결재와 감사위원들의 동의 없이 공개하자, 이 조처의 부당성을 폭로하는 글을 내부 게시판에 올렸다. 불문 결정은 감사보고서에 아무것도 기재하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도, 마치 잘못이 있는 것처럼 보고서가 수정된 것은 위법 부당하다는 지적이었다.
더욱이 최재해 원장의 지시로 마치 주심이 수정된 감사보고서를 결재한 것처럼 전산시스템까지 조작한 것으로 드러나 시민단체 등의 고발이 이어졌고, 마침내 감사원이 사상 처음으로 공수처에 압수수색을 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유병호 사무총장은 지난해 10월 감사가 본격화하기도 전에 전 전 위원장을 검찰에 고발했는데, 이는 무고죄로 처벌될 수 있는 행위였다. 감사원이 공수처 수사를 받게 된 것은 전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을 찍어내기 위해 표적 감사를 지시한 수뇌부 때문이다.
그런데도 감사원 수뇌부는 자신들의 잘못은 전혀 없고, 오로지 조 위원의 월권 행위로 이런 사달이 났다는 내부 감찰 결과를 내놓았다. 국가 최고 사정기관인 감사원의 자정 능력을 의심케 하는 후안무치한 태도다. 자신에게 엄격하지 않으면서 남에게만 추상같다면 감사원의 권위가 제대로 설 수 있겠는가. 조 위원에 대한 검찰 수사 요청은 공수처의 수사 속도를 늦추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든다. 사실상 ‘피의자’ 신분인 최 원장과 유 총장은 공수처 수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경우 형사 처벌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공수처는 애초 많은 기대를 안고 출범했음에도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다 할 수사 결과를 내놓은 바 없다. 그로 인해 수사 능력과 의지에 적잖은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감사원 수뇌부에 대한 엄정한 수사는 공수처가 존재 이유를 증명할 좋은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