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오후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에서 해병대 1사단 장병들이 실종자 수색에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호우 피해 실종자를 찾다 숨진 채아무개 상병(이하 채 상병) 사건을 조사하다가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된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국방부로부터 사건을 축소하라는 외압을 받았다고 밝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전 해병대 수사단장인 박정훈 대령은 11일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으로부터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직접적 과실이 있는” 대대장 이하로 혐의를 한정하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밝혔다. 박 대령은 채 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임성근 해병대 제1사단장 등 해병대 지휘부의 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한 조사보고서를 지난달 30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고, 지난 2일 이를 경찰에 이첩했다. 이 과정에서 해병대 지휘부의 이름과 혐의 내용을 빼라는 상부의 지시가 수차례 있었다는 것이다. 사건 축소 의혹과 관련해 국가안보실 개입설까지 나오는 가운데, 박 대령은 국가안보실 요구를 받고 자료를 안보실에 넘긴 사실도 이날 재차 확인했다.
국방부와 해병대 사령부는 ‘진실 공방’으로 몰아가려 하지만, 응당 책임져야 할 고위 지휘관들을 감싸고 있다는 의혹이 크다. 국방부는 경찰에 이첩된 사건 서류를 회수했고,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국방부 검찰단이 박 대령을 수사하도록 했다. 사건 축소 지시를 받아들이지 않자 ‘항명죄’를 덮어씌우려는 것처럼 비친다. 박 대령은 “공정한 수사가 이뤄질 수 없다”며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를 거부한다고 했다.
국방부 주장대로, ‘법리 검토’에서 국방부와 수사단의 견해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이해당사자 격인 국방부가 개입해 수사 ‘축소’ 방향으로 움직이라고 하는 건 누가 봐도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더욱이 현재 군사법원법은 ‘범죄가 의심되는 군 사망 사건’의 경우, 민간 검·경이 수사하도록 하고 있다. 2021년 군 성폭력 피해자인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을 계기로, 군의 제식구 감싸기 때문에 억울한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국민 요구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수사보고서 경찰 이첩을 막고, 국방부 조사본부에서 재수사하도록 한 것은 법 취지에 어긋나며, 과거 회귀 행태다.
채 상병은 군 상부의 지시로 안전장비도 갖추지 못한 채 급류 속에 무리하게 투입돼 숨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잘못된 지시를 한 상부의 책임을 묻는 건 수사의 기본이다. 그런데 국방부는 고위층은 놔두고 현장 간부에게만 책임을 다 덮어씌우고 끝내려 하는가. 늘 그렇듯 이번에도 군은 현장 군인은 보호하지 못하고, 상부 보호에만 급급한 것인가.
지난달 호우 피해 지역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 도중 순직한 해병대 고 채아무개 상병의 유족이 언론에 채 상병의 이름을 보도하지 말 것을 해병대사령부를 통해 요청해왔습니다. 한겨레는 유족의 뜻을 존중하여 ‘채아무개 상병’으로 표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