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7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를 찾아 산사태 피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난 16일 폴란드 현지에서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 배경을 설명하면서 ‘국내 수해 피해가 있는데, 출발 전에 취소를 검토하진 않았느냐’는 물음에 “지금 당장 서울로 뛰어간다고 해도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다”고 한 말이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15일 아침 충북 청주시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10여명이 숨지고, 충청·경북 등 전국적으로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는 상황이었다.
폴란드를 방문 중이던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했다. 이 때문에 애초 15일로 예정됐던 귀국 일정은 이틀 미뤄졌다. 우크라이나로 떠날 시점에 이미 국내 폭우 피해로 사망·실종자가 속출하고 시설 피해가 커지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실 쪽은 “우크라이나 방문 기회는 앞으로 없을 것으로 보였다”며 이렇게 말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우려보다 애초 계획했던 우크라이나 방문 기회가 더 커 보이는 것처럼 비친다. 윤 대통령 스스로 “재난의 컨트롤타워, 안전의 컨트롤타워는 대통령”이라고 밝혀놓고, ‘가치외교’라는 외교적 성과물을 더 중시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백번 양보해 우크라이나 방문이 그토록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어차피 돌아가도 대통령이 할 일이 없다’는 식의 무책임하고 무덤덤한 말이 아니라, 좀 더 낮은 자세로 국민의 이해를 구했어야 할 일이다. ‘가도 할 일 없다’는 대통령실의 말에는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대통령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데 대한 최소한의 죄송함, 희생자들을 향한 아픔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에도 침수 피해로 일가족 3명이 숨진 서울 관악구 반지하 주택을 내려다보며 “(어제) 퇴근하면서 보니까 아래쪽 아파트들이 벌써 침수가 시작되더라”고 남 일 얘기하듯 말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당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은 이를 지적하자 “비 온다고 대통령이 퇴근 안 하냐”고 되받아 할 말을 잃게 만든 적이 있다. 이번 대통령실 관계자의 말은 그때 이후에도 대통령실 분위기는 여전함을 상기시켜준다.
윤 대통령은 귀국 뒤 ‘집중호우 대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며 “국민 안전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집중호우가 올 때 사무실에 앉아만 있지 말고 현장에 나가서 상황을 둘러보고 미리미리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국정운영 최고 책임자인 윤 대통령 스스로에게 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