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6월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신생아 번호 관리 아동 실태조사방안 등 아동학대와 관련한 대응 방안을 발표하기 위해 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미신고’ 아이들의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영유아 2236명 중 1%(23명)에 대한 표본조사에서, 최소 3명이 숨지고 1명은 유기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는 전수조사에 나서고 국회는 뒤늦게 출생통보제 도입 등 입법 추진에 나섰지만 ‘뒷북 대응’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3일 “근본적인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고,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제도 보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여야는 의료기관이 출생 사실을 지방자치단체에 의무적으로 알리는 ‘출생통보제’와 산모가 출생 정보 공개를 원하지 않을 경우 익명 출산을 보장하는 ‘보호출산제’ 도입에 나설 전망이다.
이번 감사원 조사에서 영아 2명은 친모에 의해 살해되고 1명은 영양실조로 숨진 사실이 확인됐다. 1명은 누군지 모르는 이에게 넘겨졌다. 조사가 아니었으면 묻혔을 사건이다. 게다가 23명 표본조사에서만 이 정도니 전수조사 결과는 가늠하기도 어렵다. 미신고 아동 관련 강력사건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2020년 11월 생후 2개월 된 영아가 아파트 냉장고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2021년 1월에는 8살 어린이가 친모의 학대로 숨졌다. 경북 구미에선 친모의 방임으로 3살 아이가 혼자 숨진 채 미이라 상태로 발견됐다. 모두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미신고 아동으로 공적 영역에서 보호받지 못한 ‘학대 피해자’들이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은 출생신고 여부를 전적으로 부모에게 맡기고 있다. 1개월 안에 신고하지 않은 부모에게만 과태료 5만원이 부과될 뿐이다. 부모가 고의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아이는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필수 예방접종 등 적절한 의료 조처과 복지 혜택도 받을 수 없고, 취학연령이 돼도 학교에 다닐 수 없다. 서류상 존재하지 않으니, 불법 입양과 유기, 매매 등 범죄와 학대에 노출될 위험이 매우 크다.
그동안 시민사회는 부모가 아닌 의료기관이 출생통보를 의무화하는 출생통보제 도입을 요구했으나, ‘아동보호를 민간 의료기관에 떠넘기려 한다’는 의료계 반발에 부딪혀 구체적인 논의가 진척되지 못했다. 국회에 관련 입법이 쌓여 있으나 여야의 무관심 속에 모두 뒷전으로 밀렸다. 저출생 대책에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이미 태어난 아이를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하는 것은 국가의 존재 의미를 의심하게 한다. 단 한명의 아이도 놓치지 않도록 정부·국회의 신속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