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지난 5일 <한국방송>(KBS)의 티브이(TV) 수신료 분리 징수 방안을 마련하라고 방송통신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에 권고했다. 지금은 월 2500원의 티브이 수신료를 전기요금에 합산해 징수하고 있는데, 관계 법령을 개정해 전기요금과 별도로 징수하라고 사실상 지시한 것이다. 현재 한국방송 전체 재원에서 수신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45%에 이른다는 점에서, 수신료 분리 징수는 공영방송 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무책임한 발상이다. 돈줄을 죄어 공영방송을 길들이려는 의도라면, 언론 자유 훼손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티브이 수신료와 전기요금을 통합 징수하는 현행 제도는 방송법에 근거해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부터 시행됐다. 방송법은 수신료 납부를 티브이 수상기 소지자의 의무로 규정하고, 한국방송이 지정하는 대상에게 수신료 징수 업무를 위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방송법 시행령은 한국방송의 위탁을 받은 기관이 수신료를 징수할 때 ‘(자기) 고유 업무와 관련된 고지 행위와 결합하여 이를 행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런 법령에 따라 한국전력이 한국방송의 위탁을 받아 전기요금 고지서를 통해 수신료를 함께 징수해왔다. 정부는 시행령을 개정해 한전의 통합 징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한다.
애초 수신료 통합 징수 제도가 도입된 것은 공영방송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법적 의무인 수신료 납부의 공평성과 효율성을 기하려는 목적이 컸다. 수신료 분리 징수가 현실화하면 납부 회피가 늘어 수신료 수입이 크게 줄고, 징수 관련 비용은 대폭 늘 수밖에 없다. 한국방송의 자료를 보면, 한전 위탁 이전에는 수신료 수입액의 33%가량을 징수 관련 비용으로 지출했는데, 위탁 이후 그 비율이 10% 수준으로 낮아졌다. 수신료 수입이 줄면 한국방송은 자구책으로 상업광고 의존도를 높이거나 장애인 방송 등 공익성 높은 프로그램을 축소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여러차례 통합 징수가 부당하다는 취지의 소송이 제기됐지만,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입법 목적의 정당성 등을 이유로 한국방송 쪽의 손을 들어줬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아는 정부가 수신료 제도 개편에 발 벗고 나선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수신료를 볼모로 한국방송을 압박해 정권에 순치시키겠다는 속내를 모르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반민주적이고 치졸한 행태를 당장 그만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