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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미국 도청 덮어놓고 부인·거짓말 국가안보실, 국민에게 사과해야

등록 2023-04-14 18:53수정 2023-04-15 02:30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13일(현지시각) 미 국방부의 기밀문서를 유출한 혐의로 매사추세츠 주방위군 공군 소속의 잭 테세이라 일병을 노스다이튼에 있는 자택에서 체포하고 있다. 노스다이튼/로이터 연합뉴스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13일(현지시각) 미 국방부의 기밀문서를 유출한 혐의로 매사추세츠 주방위군 공군 소속의 잭 테세이라 일병을 노스다이튼에 있는 자택에서 체포하고 있다. 노스다이튼/로이터 연합뉴스

한국 국가안보실 도청 내용을 포함한, 미국 국방부 기밀문서들을 유출한 혐의로 미국 주방위군 일병이 체포됐다. 며칠 전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상당수 정보가 위조됐다”고 단정했으나, 이젠 유출 문서들이 진본이라는 걸 부인하기 힘들어졌다. 한국 정부가 처음부터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기보단 오로지 임박한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이 잘못될세라 미국을 변호하며 사태를 서둘러 진화하려는 데만 몰두한 탓이다. 금세 탄로 날 거짓말을 한 데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김 차장은 지난 11일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한·미 국방장관 통화를 근거로 “위조라는 데 한·미의 평가가 일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쪽은 명시적으로 “위조”라고 한 적이 없고, 우리 국방부가 낸 공식 자료에도 “위조”라고 돼 있지 않다. 김 차장은 워싱턴에 도착해선 “미국이 ‘악의를 가지고’ (도·감청을)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말해, 이 문제를 희화화시켰다. 취재진이 유출 문건의 진위를 묻자 “같은 주제로 물어보면 떠나겠다”며 고압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국민들에게 ‘이 문제는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오만한 자세일 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궁색함을 오히려 드러내 의구심을 키운 셈이다. ‘대통령실이 뚫렸다’는 사실에 불안해하는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죄송함도 전혀 볼 수가 없다. 윤 정부 대통령실의 공적 이미지를 크게 훼손한 행위다. 정작 같은 날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출처와 유출 범위를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사실상 유출 문서가 진본임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고 있었다.

이어 13일(현지시각) 기밀문서를 대량 유출한 매사추세츠 주방위군 공군 소속 일병이 체포되는 모습이 전세계로 전해졌다. 그제야 정부 고위 당국자가 이날 워싱턴특파원 간담회에서 도·감청 여부에 대해 “정부도 확정하지 않았다.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말을 바꿨다. 그러면서 “상대방이 우리에 대해 정보 활동을 할 수 있는 개연성은 어느 나라나 있다. 우리도 그런 활동을 안 한다고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미국을 변호하느라 ‘우리도 도청한다’는 식의 외교적 자해 행위를 한 것이다.

국가안보실 도청이라는 엄중한 상황 앞에 대통령실은 미국에 대해 진상규명을 요구하기보다 처음부터 “도청은 없었다”, “동맹 훼손하지 말라”며 내부로 화살을 돌렸다. 사실이 점차 드러나면서 결과적으로 스스로 신뢰를 떨어뜨렸음이 확인되고 있다. 14일 한국갤럽이 공개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5개월여 만에 20%대로 급락했고, 부정 평가의 가장 중요한 이유로 ‘외교’가 꼽혔다. 민심의 준엄한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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