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2시21분께 대전 서구 둔산동 탄방중 인근 도로에서 만취한 운전자가 어린이보호구역 내 인도를 덮쳐 9살 초등학생 배승아양이 숨졌다. 사진은 당시 사고 현장 모습이다. 연합뉴스
9살 초등학생이 한낮에 친구들과 인도를 걸어가다 차에 치여 숨졌다. 너무나 아까운 어린 생명의 희생을 ‘인도’와 ‘교통사고’라는 모순된 단어로 설명하는 뉴스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게다가 사고 현장은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이었다. 어린이의 생명과 안전을 정부와 사회가 지켜줄 수 있다는 믿음조차 흔들리게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지난 8일 대전에서 어린이보호구역 보행로를 걷던 초등학생 4명이 도로 경계석을 넘어 돌진한 차량에 치여 다쳤고, 이 가운데 배승아양은 이튿날 새벽 숨을 거뒀다. 운전자는 면허 취소 수치가 넘는 음주 상태였다. 안전펜스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지난해 12월에는 서울 강남에서 초등학교 3학년 이동원군이 보행로가 없는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희생됐다. 안타까운 사고가 벌어져야만 안전의 사각지대를 발견하고 허둥지둥 대책 마련에 나서는 어른들의 태만이 어린이들을 위협하는 흉기인 셈이다.
어린이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도입된 ‘민식이법’도,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만든 ‘윤창호법’도 배양의 생명과 친구들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발생한 어린이 교통사고는 민식이법이 시행된 2020년 483건으로 약간 줄었다가 2021년 523건으로 다시 늘었다. 법이 도입되기 전인 2017~2018년보다 오히려 많아졌다. 법원의 양형 기준도 느슨하다. 이번에 사고를 낸 운전자는 혈중 알코올 농도 0.123%로, 취소 기준인 0.08%를 넘겼지만 윤창호법 적용은 불투명한 상태다.
그런데도 정부는 정반대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실은 지난 9일 ‘국민제안 2차 정책화 과제’ 15건의 하나로 민식이법 재검토 방안을 포함시켰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속도 제한을 시간대와 지역별로 탄력적으로 운영하겠다고 한다. 사소한 교통 불편을 이유로 안전의 빗장을 풀겠다는 것이다. 법을 더 강화하고 단속에도 힘을 쏟아야 할 마당에 정부가 오히려 경각심을 흐트러뜨리는 신호를 줘서는 절대 안 된다. 국회도 어린이 안전 관련 법·제도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시급히 정비해야 한다. 법원 역시 양형 기준을 재조정하는 등 엄벌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어린이의 생명·안전보다 더 소중한 정책 과제와 법적 가치가 어디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