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양곡관리법 거부권을 대통령에게 공식건의하는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29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지난 23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에서 의결한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공식화한 것은 현 정부 들어 처음이다.
한 총리는 쌀 생산량이 평년보다 3~5% 늘어나거나 쌀 가격이 5~8% 넘게 떨어질 경우, 초과 생산량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한 개정안에 대해 “시장 원리를 거스르는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시장의 수급조절 기능 마비, 연간 1조원 이상 재정 부담, 시장 원리를 거스르는 과도한 국가 개입 등을 개정안의 문제점으로 열거했다. 개정안이 남아도는 쌀만 더 생산하게 하고 밀, 콩 등 부족한 작물의 자급률을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러나 정작 어떻게 쌀값을 안정시키고 식량 안보를 확보할 것인지 등 양곡관리법이 폐기될 경우 농업과 농민이 받을 충격을 보듬을 방법에 대해선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않았다. 그저 “다양한 지원 정책” “쌀 소비 확대” 등 추상적이고 뜬구름 잡는 듯한 주장만 짧게 언급할 뿐이었다. “밀·콩 등 재배에도 직불금 지원” “가루쌀 산업 활성화”를 거론했지만, 전혀 구체적이지 않아 과연 실질적 의지가 실린 것인지 의심스럽다. 민생 대책은 없이 법안을 주도한 야당에 대한 정치적 공격에만 치중해서야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더욱이 총리가 미리 대국민 담화 형식으로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는 방식을 취해, 대통령 부담을 대신 떠안는 듯한 모양새까지 보였다.
이날 한 총리가 지적한 것처럼 현 개정안에 일부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산지 쌀값이 1년 전보다 27.6%나 폭락하면서 쌀 농사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 농민의 삶에도 큰 충격을 줬다. 정부가 이에 조금이라도 책임을 느낀다면, 거부권 행사의 정당성만 강변할 게 아니다. 법 취지를 살리면서도 부족한 점을 보완해 실질적으로 농민의 고통을 덜 방안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벼 재배 면적 관리 및 쌀 수급 대책 등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거부권 행사로 이 문제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야당은 같은 내용의 법안을 재입법한다는 방침이다. 이럴 경우 정부는 또 거부권으로 맞설 건가. 시름 깊은 농민을 옆에 두고, 이 문제마저 정치공방 소재로 삼을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