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일본 도쿄 게이오대학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조선은 원래 일본 영토”라고 주장한 메이지 시대 침략론자인 오카쿠라 덴신의 말을 인용해 비판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한-일 정상회담에서 강제동원 문제 이외에 양국 간 첨예한 외교 현안인 독도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테이블에 올랐는지 여부를 두고 대통령실의 설명이 계속 오락가락하고 있다. ‘위안부’는 일제강점 과거사의 상징과도 같은 문제이며, 독도 영유권은 절충이나 양보가 있을 수 없는 영토 문제다. 이 같은 민감한 현안이 어떻게 다뤄졌는지 정부는 국민 앞에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릴 의무가 있다.
일본 쪽에선 이번 정상회담에서 위안부·독도 문제가 거론됐다는 게 기정사실처럼 다뤄지고 있다. 일본 정부의 공식 브리핑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한-일 (위안부)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요구했다”고 밝히는가 하면,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가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한-일 간 현안에 “다케시마(독도) 문제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통령실의 설명은 모호하거나 말이 바뀌고 있다. 정상회담 당일인 16일에는 “강제징용 문제를 비롯해 미래지향적으로 한-일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에 얘기들이 집중됐다. 그것으로 답변을 대신하도록 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가, 17일에는 언론 공지를 내어 “위안부 문제든 독도 문제든 논의된 바가 없다”고 못을 박는 듯했다. 그러나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18일 언론 인터뷰에서 “정상회담에서 오고 간 정상들의 대화는 다 공개할 수가 없다”거나 “제가 기억하기로는 일본 당국자가 우리에게 독도 얘기를 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 애초의 모호한 해명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 총리를 만나 독도의 일본 땅 표기를 두고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해 파문이 일었다. 당시엔 우리 정부는 물론 일본 정부도 이를 부인했다. 반면 이번엔 일본 정부가 대놓고 독도·위안부 문제가 거론됐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일본 쪽이 정상회담 내용을 왜곡한 것이라면, 정부가 강력히 항의·반박해야 마땅하다.
김태효 차장은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에 대해 “일본이 깜짝 놀랐다. 이렇게 하면 한국 국내 정치에서 괜찮을지 모르겠다(고 반응했다)”는 말까지 했다. 국민 의사에 역행하는 외교정책을 편 것을 자화자찬하는 듯한 태도가 놀랍다. 또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 게이오대학 연설에서 “조선은 원래 일본 영토”라고 주장한 메이지 시대 사상가 오카쿠라 덴신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총체적 굴욕 외교’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