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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소송 통한 ‘주식 백지신탁’ 무력화 시도, 그만둬야

등록 2023-03-02 18:35수정 2023-03-03 02:37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회원들이 1월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동 경실련 강당에서 윤석열 정부의 장·차관 주식백지신탁 의무 이행 실태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회원들이 1월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동 경실련 강당에서 윤석열 정부의 장·차관 주식백지신탁 의무 이행 실태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박성근 국무총리비서실장이 건설사 대주주인 배우자의 회사 지분을 백지신탁하라는 인사혁신처의 결정에 불복해 국민권익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앞서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도 배우자 주식 백지신탁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고위 공직자들의 잇따른 불복으로 ‘이해충돌 방지’라는 제도 취지가 무력화될까 우려된다.

박 실장은 지난해 9월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 당시 102억9902만원의 주식을 신고했는데, 이 가운데 80억여원이 배우자의 주식이었다. 박 실장의 배우자는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의 장녀이자, 이 회사의 사내이사다. 직무관련성 심사 청구를 받은 인사혁신처 소속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주식을 모두 처분하거나 백지신탁하라고 통보했다. 백지신탁 제도는 공직자 본인과 직계 존비속이 보유하고 있는 3000만원 초과 주식을 임명일로부터 두달 안에 팔거나 금융기관에 백지신탁해 처분하도록 하고 있다. 업무 수행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공적·사적 이익의 충돌 가능성을 미리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박 실장은 지난달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정책 결정 관여 가능성이라는 ‘추상적 위험’을 근거로 배우자 주식을 처분하라는 요구는 재산권 침해라는 주장이다. 그는 또 자신의 일이 총리 비서 업무에 한정되어 있어 정책 결정 등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된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 ‘비서 업무’는 국정 전반을 포괄하는 국무총리 활동을 보좌하는 역할이다. 총리비서실장이 차관급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또한 공직자윤리법에 주식 백지신탁 규정이 있는데 이제 와 행정심판을 제기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주식을 포기할 수 없으면 애초 공직을 맡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 역시 배우자가 보유한 8억원대의 바이오회사 주식을 처분하라는 정부 결정이 재산권 침해라며 소송을 벌이고 있다. 배우자 보유 주식이 감사원 직무와 관련이 없다는 주장도 펴고 있으나, 최근 피감기관이 이 바이오회사와 모기업에 국비 124억여원을 지원한 사실이 <에스비에스> 취재로 드러나기도 했다.

일각에선 주식 백지신탁 제도가 ‘유능한 인재’의 공직 진출을 막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직자의 청렴과 이해충돌 방지의 중요성을 넘어설 수는 없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 제도를 두고 있는 이유다. 책임 있는 고위 공직자들의 백지신탁 ‘불복’이 국민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 성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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