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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일어나선 안 될 참사,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등록 2022-10-30 20:12수정 2022-10-31 02:41

핼러윈 데이 앞둔 주말 이태원서 비극
지자체·경찰 등 대비미흡, 철저히 따져야
초당적 협력으로 안전사회 근본 대책을
29일 밤 핼러윈 축제에 몰린 인파로 압사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사고 현장에 30일 오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이 두고 간 조화가 놓여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9일 밤 핼러윈 축제에 몰린 인파로 압사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사고 현장에 30일 오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이 두고 간 조화가 놓여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일어나고 말았다. 지난 29일 늦은 밤 처음 소식이 전해졌을 때만 해도 이 정도의 사태를 예상한 국민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장의 구급대원들이 아무리 온 힘을 써서 당겨도, 포개지고 뒤엉킨 시민들을 제때 구조할 수 없었다. 밤새 텔레비전 화면과 사회관계망서비스로 현장 상황을 보고 듣던 이들의 마음은 타들어갔고, 30일 아침 우리 사회는 형언하기 어려운 비통함에 휩싸였다. 핼러윈 데이를 앞두고 서울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는 사망자 수가 속절없이 늘어 150명을 훌쩍 넘겼다. 다수가 20대 젊은이와 여성들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담화를 내어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과 참사가 발생했다”며 “정부는 오늘부터 사고 수습이 일단락될 때까지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하고, 국정 최우선 순위를 사고 수습과 후속 조처에 두겠다”고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태원이 있는 용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사망자 유족과 부상자에 대한 치유 지원금과 심리치료 등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다음달 5일까지를 애도기간으로 정하고, 서울시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하기로 했다. 수습과 지원, 애도 어느 것 하나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데 일어난 일이 다름 아닌 ‘참사’다. 뒤집어 말하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전 대비’가 더욱 중요한 이유다. 이태원 참사라고 다르지 않았을 터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던 지난해 핼러윈 데이 전후에도 이태원 일대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참사 하루 전인 28일 밤에도 걷기 힘들 만큼 밀려든 인파에 떠밀려 행인이 넘어지는 일이 있었으나, 다행히 인명 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지자체와 경찰 등이 이런 사정을 몰랐는지도 의문이지만, 어느 경우든 재난 대비에 심각한 허점이 있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7일 용산구는 ‘핼러윈 데이 대비 긴급 대책회의’ 결과를 보도자료로 냈으나, 인파가 몰려 발생할 수 있는 대형 안전사고를 고려한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사고가 처음 일어난 것도 아니다. 2005년 경북 상주에서도 공연장에 인파가 몰려 11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그 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축제 사고 예방을 위한 내용이 강화됐고, 행정안전부도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을 두고 있다. 그러나 행안부와 지자체 모두 ‘핼러윈 데이는 법적으로 축제가 아니다’라며 매뉴얼을 적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가 막힐 따름이다.

경찰도 “어느 때보다 축제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고 판단했지만, 현장에 배치한 인력은 137명에 그쳤다. 그나마 인파에 의한 안전사고가 아닌 마약·성폭력 같은 사건·사고에 대비한 것이었다. 좁은 골목길을 일방통행식으로만 바꿨어도 달랐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경찰과 지자체는 이제 와 책임 공방까지 벌이고 있다. 양쪽을 함께 관할하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책임 떠넘기기는 더 심각하다. 이 장관은 이날 합동 브리핑에서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했다고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여러 소요와 시위가 있었기 때문에 경찰·경비 병력이 분산됐던 측면이 있다”고 했다. 사태 원인 파악과 수습을 이끌어야 할 행안부 장관이 집회·시위 핑계를 대는 듯한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여당에서도 “물러나야 한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30일 새벽 서울 용산 이태원 해밀턴 호텔 인근 사고 현장에서 병원 이송을 위해 대기하는 부상자들을 시민들이 돌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30일 새벽 서울 용산 이태원 해밀턴 호텔 인근 사고 현장에서 병원 이송을 위해 대기하는 부상자들을 시민들이 돌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반면 국민들은 비통함을 달래며 성숙한 태도로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그동안 극한의 정쟁에 매달려온 여야 정치권이 애도와 함께 참사의 후속 조처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초당적 협력으로 근본적인 제도 보완에 나서야 할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각국 지도자들과 세계 시민들도 이번 참사에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참사 현장에선 시민들과 인근 상인들이 피해자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심폐소생에 매달리고 구조에 나서기도 했다. 참담함 속에서도 이들의 헌신에서 우리는 작지 않은 위안을 얻고 희망을 본다. 그 위안과 희망이 이제는 피해자들에게로 온전히 전해지기를 바란다.

진정한 애도는 이런 비통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뜻을 모으는 데 있을 것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도 드러나고 있듯이, 사회적 참사는 한두 가지 원인으로만 발생하지 않는다. 사고 원인을 낱낱이 찾아내 분석하고, 잘못이 있는 이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묻고,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 대책을 찾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지난한지, 우리는 세월호 침몰 등을 고통스럽게 겪으며 확인해왔다. 최종 목적지는 모두가 안전한 사회이며, 모두가 안전한 사회는 생명과 인권이 존중받는 문화가 굳건히 자리잡은 사회일 터이다. 다시 한번 피해자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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