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마친 뒤 텅 빈 더불어민주당 의원석 사이로 걸어나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국회 무시 사과하라’, ‘이 ×× 사과하라’, ‘야당탄압 중단하라’ 등을 요구하며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불참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원이 불참한 가운데 진행된 윤석열 대통령의 25일 내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은 정치적 극한 대치 상황을 걱정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더 답답하게 했을 듯하다. 윤 대통령은 “국회에서 법정기한(12월2일) 내 예산안을 확정해 어려운 민생에 숨통을 틔워 달라”고 요청하면서도, 야당과 국회의 협력을 이끌어낼 적극적인 비전은 제시하지 않았다. “국회 이 ××들” 욕설에 대한 사과나 유감 표명도 끝내 거부했다. 경제·안보 복합 위기에 맞서 국민 역량을 결집해야 할 때에, 통합의 책무를 잊은 듯한 윤 대통령의 대결적 행태가 유감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저는 10차례 비상경제민생회의를 통해 직접 민생 현안을 챙겼다” “취약계층과 사회적 약자에게 연료비, 식료품비, 생필품비도 촘촘하게 지원하는 한편, 장바구니 물가도 챙겼다” “폭우와 재난 피해 복구와 지원에도 매진했다”고 밝혔다. 고물가와 정부의 안일한 재해 대응, 여당 소속 강원도지사발 유동성 위기 등으로 힘겨운 민생에 대한 위로와 성찰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청년 원가주택 신규 공급, 농축수산물 할인쿠폰 1100억원 확대 등을 민생 대책으로 제시했지만, 야당에서는 “노인·청년 일자리, 지역화폐, 임대주택 등 10조원 정도의 민생 예산을 삭감하고 겨우 몇푼 편성한 걸 약자 복지라 하는 걸 보면서 참 비정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는 평가가 나왔다.
윤 대통령은 욕설 사과 등을 요구하는 민주당 의원들의 손팻말 시위 현장을 그냥 지나치더니, 국회의장 등 5부 요인과 국민의힘·정의당 지도부와의 사전 환담에서도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이 ××” 사과 요구에 대해 “사과할 일은 하지 않았다”고 일축했다고 한다. 지난 5월 첫 시정연설에서 여러번 통합·협치를 강조한 것과 달리 이날은 한 차례 “국회 협력이 절실하다”고 했을 뿐, ‘협치’ 표현은 아예 입에 올리지 않았다. 국정을 원활히 이끌겠다는 간절함과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민주당이 본회의장 입장을 거부하며 이날 시정연설은 헌정사 초유의 ‘반쪽짜리’가 됐다. 바로 전날 당사가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전방위적인 야당 몰아치기에 대한 대응 차원이라고 해도, ‘출구’ 없는 대결 구도만 더 굳힌 건 아닌지 민주당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은 국정을 위임받은 집권 세력에게 있음이 분명하다. 정치 실종이 길어질수록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간다는 사실을 윤 대통령과 여권은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