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열린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희생자 서울 추모행사에서 한 참석자가 헌화한 뒤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에스피씨(SPC)그룹 계열의 빵 재료 제조업체 에스피엘(SPL)에서 20대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진 지 8일 만에 또 다른 계열사인 샤니에서 끼임 사고로 노동자의 손가락이 절단되는 일이 발생했다. 두 사고는 밤샘 근무 뒤 새벽 6시 무렵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끼임 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 등 회사 쪽의 안전보건관리체계 미비에 대한 책임 추궁과 함께, 주야 맞교대 근무에 따른 밤샘·장시간 노동의 위험성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지난 23일 새벽 6시10분께 경기 성남에 있는 샤니 제빵공장에서 40대 노동자가 제품 출하를 앞두고 검수를 하던 중 빵을 담는 플라스틱 상자와 자동 박스포장기 사이에 오른쪽 검지손가락이 끼여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앞서 지난 15일 에스피엘 공장에서도 새벽 6시15분께 20대 노동자가 샌드위치 소스를 혼합하는 기계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주야 맞교대는 아침 8시에 출근하는 주간조와 저녁 8시에 출근하는 야간조가 맞교대를 해가며 일하는 방식이다. 야간조는 밤샘 노동을 하게 된다. 에스피엘의 경우, 주야 맞교대에 더해 주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특별연장근로를 올해 들어서만 42일에 걸쳐 실시하는 등 장시간 노동이 잦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들은 최대한 쉼 없이 공장을 돌리기 위해 주야 맞교대를 선호하지만, 밤샘 노동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주야 맞교대제의 폐해는 익히 알려져 있다. 생체리듬을 망가뜨려 만성피로와 수면 부족을 초래한다. 작업 중 사고 위험을 높이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에스피엘 사고로 숨진 20대 노동자도 평소 지인들에게 야간 근무에 따른 고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야간 노동은 흔히 ‘과로 산재’로 불리는 뇌·심혈관계 질환의 원인이기도 하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일찌감치 주야 교대 근무(야간 노동)를 2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바 있다.
야간 노동이 생명과 안전에 미치는 악영향이 드러나면서 선진국에선 야간에는 일정 시간 이상 일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규제에 나서고 있다. 야간 노동 일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과로를 줄이기보다는 ‘노동시간 유연화’를 통해 장시간 노동의 길을 터주는 방안을 밀어붙이고 있으니 우려스럽기만 하다. 이윤이 사람의 생명보다 먼저일 순 없음을 새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