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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금융시장 혼란’ 영국의 무모한 감세정책이 주는 경고

등록 2022-09-28 18:33수정 2022-09-29 02:41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지난 23일 런던 다우닝가에 있는 총리관저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런던/ 로이터 연합뉴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지난 23일 런던 다우닝가에 있는 총리관저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런던/ 로이터 연합뉴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의 감세정책이 영국뿐만 아니라 국제금융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준기축통화인 영국 파운드화가 26일 장중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데 이어 28일에도 초약세를 이어갔다. 미국 중앙은행의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달러가 초강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파운드화 폭락이 ‘킹달러’(달러 초강세) 현상을 심화시키는 형국이다. 28일엔 세계경제 침체 우려가 재부각되고 중국 위안화 약세까지 겹쳐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40원을 돌파하고 코스피도 2200선이 무너지자, 당국이 긴급하게 시장안정화조처에 나섰다.

이번 국제금융시장 혼란의 중심에는 영국 감세정책이 있다. 3주 전 출범한 영국 새 내각은 23일 연간 450억파운드(약 69조원) 규모의 감세정책을 발표했다. 예정됐던 법인세 인상을 철회하고 소득세율을 인하하는 게 핵심이다.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총리 추종자인 트러스 총리는 당대표 선거 때부터 감세와 규제완화를 공약으로 내거는 등 이른바 ‘공급 중시 경제학’을 신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감세가 경제성장을 촉발하고 세수 확대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정책은 효과가 장기적으로 나타나거나 불확실한 반면, 단기적으로는 세수 감소로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게다가 고물가·고금리 상황에서 발표된 이번 감세는 수요를 자극해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대출이자 부담마저 키울 수 있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를 비롯한 명망 있는 경제 전문가들이 거의 한목소리로 영국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7일 이례적으로 비판 성명을 내놨다. 이 기구는 “인플레 압력을 고려할 때 현시점에서 대규모 재정 패키지를 권장하지 않는다. 재정정책이 통화정책과 엇갈리게 작동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중앙은행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인상을 하고 있는데 정부가 감세로 물가를 자극하는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이 기구는 또한 감세 혜택이 주로 고소득층에 돌아가 불평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례는 현실을 도외시한 채 경제정책을 추진할 경우 큰 대가를 치른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7월 5년간 약 60조원 규모의 감세안을 발표했다. 재정여력에서 영국과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 또한 고물가·고금리 상황에 처해 있다. 감세는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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