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4일 서울외환시장에서 미국발 물가 충격의 여파로 장중 달러당 1395.5원까지 치솟았다. 이날 환율은 전날보다 17.3원 오른 1390.9원에 마감됐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미국발 물가 충격으로 국내외 금융·외환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미국의 8월 소비자물가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서 인플레(전반적 물가상승)의 고착화·장기화 가능성이 커진 탓이다. 다우·나스닥지수는 13일 3.9%, 5.2%나 폭락했고, 코스피도 14일 1.6% 하락했다. ‘킹달러’(달러 초강세) 현상으로 원-달러 환율이 장중 1395원까지 치솟아 경제 불안감을 키웠다. 이미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타격을 받고 있는 가계·기업 등 경제주체들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 점차 커지는 양상이다.
미국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8.3% 올라 전달(8.5%)보다는 둔화됐으나 예상치(8.1%)를 웃돌았다. 특히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물가는 7월 5.9%에서 8월 6.3%로 오히려 올랐다. 근원물가 상승은 물가상승 압력이 전방위적으로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당국자들은 고인플레의 고착화를 우려해왔는데 이번 지표가 이를 확인시켜주는 것이어서 시장에 충격을 줬다. 고인플레 고착화는 가계의 소비 여력 감소로 경기를 위축시키며, 중앙은행은 이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을 가속화하게 된다.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다음주 회의에서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인상)을 결정할 가능성이 거의 확실시된다. 11월 회의에서도 추가로 0.75%포인트 인상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와, 연말 미국 기준금리는 현재 우리나라와 같은 2.5%에서 4% 안팎으로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 한-미 간 금리 격차가 커지면서 우리나라도 기준금리 인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금리인상에 따른 달러 초강세는 글로벌 파급 효과를 통해 신흥국의 금융위기를 촉발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후폭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환율이 불과 석달 전 1300원을 넘어선 데 이어 1400원대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1400원대 진입은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두차례밖에 없었다. 다만, 지금의 원화 약세는 ‘킹달러’ 현상 여파로 다른 나라 통화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지나친 공포심은 경계해야 한다. 다행히 국가 신용도를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안정적인 수준이다.
이런 때일수록 경제사령탑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거시경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튼실히 해 경제주체들의 불안 심리를 잠재울 필요가 있다. 그런데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경각심을 갖고 대처하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추 부총리는 규제개혁과 재정준칙 법제화에 몰두하고 있는 듯하다. 이 총재도 지난달 말 “미국보다 금리인상을 먼저 종료하기는 어렵다”는 메시지를 낸 것이 마지막이다. 경제사령탑이 앞에 나서 경제 상황을 국민들에게 소상히 설명하고, 정부가 철저히 대비한다는 신호를 분명하게 보내야 한다.